• 최종편집 2019-11-2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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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제우의 사주명리 이야기] ⑦ 아는 만큼 보인다!
      최제우_배우 겸 명리학자, JTBC 예능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자로 출연중이다.   어제 상담 오신 분들이 시작 전에 이런 얘기를 하셨다. 저 용신(龍神) 뽑아 주나요?   (여기서 용신이란 명리(命理)에서 자기에게 없는 오행(五行)을 얘기하는데 뽑는 기준도 여러 가지다. 그것을 다 얘기하면 수업이 될 것 같으니 간단히 이해하는 정도로만 하고) 용신(龍神)이 들어오면 대박나지 않아요? 이런 질문은 어느 정도 사주(四柱)를 자주 보러 다니거나 관심을 조금 가진 사람들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요즘 시대가 참으로 무섭다. 명리(命理)를 공부하면 만세력(萬歲曆)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절기(節氣)를 기반으로 하여 날짜를 간지(干支)로 풀어놓은 것인데 연월일시(年月日時)에 간지(干支)를 사주(四柱)로 세우고, 대운(大運)을 나열하는 것이 명리(命理)의 기본이다. 요즘 시대가 무섭다는 말은 사주(四柱) 세우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어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에 자신의 생년월일시만 넣으면 자동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만세력(萬歲曆)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이것저것 까지 적는 시간까지 하면 보통 5~10분정도 소요된다. 필자도 현재는 만세력(萬歲曆)을 책으로 뽑지는 않는다. 그 시간을 차라리 상담하는 시간에 더 할애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 판단하기에...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아직 전문적인 기초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만세력(萬歲曆)을 뽑을 수 있다는 점. 거기에 각자 알고 있는 명리(命理) 지식을 대입한다는 것이 부조리에 시작이 되는 것이다. 난 ‘木’이 없어서 ‘木’ 있는 남자를 만나야 돼. 그러면서 지금 현재 썸 타고 있는 남자나 주변인들의 연월일시를 넣어 사주(四柱) 안에 ‘木’만 찾아 삼만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치에 아주 어긋나는 해석은 아니다.   다만 본인에게 ‘木’이 없어서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나, 극복할 수 없는 부분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없는 ‘木’만 채우게 되면 만사형통이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없는 건 없는 것이다. 운에서 도와주지 못하면 어찌되었건 채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의자에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이 그 오행(五行)이 들어왔다고 해서 걷거나 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에 늘 갈망하고, 갈증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즉 재산도 100억이 있고, 가족도 행복 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자신은 늘 의자에서 일어나 걷고, 뛰는 것이 본인 인생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명리(命理)의 좋은 도구를 혹세무민(惑世誣民) 하여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오늘 사실 木 火 土 金 水의 비밀을 칼럼 주제로 노트북을 열었으나 木을 떠올리다 보니 어제의 일이 생각나 갑작스럽게 주제가 바뀌게 되었다.  아직 명리(命理)에 무한한 세계를 손바닥만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필자도 혹세무민(惑世誣民) 하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분발해야겠다.   
    • 운세
    2019-11-07
  • [제주신화기행] ⑥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최종회)
    성산일출봉 인근마을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⑤편에서 이어집니다. 김녕에서 가까운 세화리와 하도리를 지났다. 이곳은 1930년대 잠녀(潛女)들의 투쟁을 그린 『껍질과 속살』, 『바람타는 섬』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해녀조합 간부들인 일본인들이 가혹하게 잠녀들을 수탈 했고, 이에 대한 저항을 다룬 소설들이다.  해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잠녀는 제주도 바닷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나는 세화리와 하도리를 뒤로 하고 차를 몰아 성산 일출봉 터진목에서 그들을 만났다. 까만 잠수복을 한 그들은 사진을 찍는 나를 웃으며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박으로 정성들여 만든 테왁을 썼는데 지금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것을 쓰고 있다. 조금 거리를 두고 해녀들이 물에 들었다.  1936년 21세 때부터 제주도를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泉端一)의 『제주도』에는 “바가 지에 끈이 달린 테왁과 조개 딸 때 쓰는 갈퀴를 들고 물안경 쓰고 자맥질을 한다.…… 똑바로 선 자세로 물속에 얼굴을 박고, 목표물을 가늠한 다음 발을 힘 있게 굽혀 가슴께로 끌어당기고 머리를 잽싸게 물속에 디밀어, 몸을 뻗고 발을 공중에 흔들어 침하속도를 높인 다음, 신체가 완전히 물속에 잠기면 발을 차듯이 움직이고, 손으로 물을 양옆으로 가르면서 가라앉는다. 한 번의 잠수를 끝낼 때는, 몸을 꺾은 자세로 다리를 아래로 내려서 힘차게 바닥을 차고 솟구친다. 수면에 뜨는 것과 동시에 ‘휘유’ 휘파 람을 부는 것이다.”라고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 휘파람을 제주에서는 ‘숨비소리(숨비 질소리)’라고 한다. 이 소리를 내고는 물질하는 친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해녀들은 1900년대 초부터 섬 밖으로 벌이를 나갔다고 한다. 일본, 육지 연안, 강원도, 심지어는 청진 까지 갔다가 기선을 타고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 청도(靑島)까지도 갔다고 한다.   현기영의 거룩한 생애를 학창시절에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소설은 해녀 ‘간난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녀는 일제시대 때 잠녀의 딸로 태어나 17살에 상꾼 잠녀가 되어 빼앗긴 밭을 되찾는다. 놀음에 미친 시아버지 때문에 무너진 집안을 그녀는 잠녀 일을 하여 일으 키고, 어린 신랑을 읍내 공립학교까지 보낸다. 그리고 일제 말엽에는 징용에 끌려가게 된 남편을 이끌고 육지로 물질 나가 금강산 근처에서 8.15 광복을 맞는다. 마침내 미군과 소련군이 지키는 38선을 넘어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4.3항쟁 시기에 한 많은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 졌다. 강인한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너무도 서러웠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 뒤로는 일출봉이 장엄하게 서 있었고, 파도는 거칠었다. 이곳은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신경숙의 소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표선민속촌과 성읍 민속마을에 들러 제주 도세기(돼지)도 보고, 올레며 정낭도 보며 옛 기억을 더듬었 다. 내 유년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갈옷을 파는 가게 앞에서도 한참을 서성거렸다. 푸른 감으로 물을 들이는 갈옷은 여름철 뙤약볕에서 김을 맬 때면 이만한 옷이 없었다. 땀도잘 흡수하고 바람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차를 달려 서귀포에서 이중섭이 거닐던 천지연폭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바로 추사 적거지로 향했다.  추사는 대정 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는 처음 화북진에 도착한 후 걸음을 옮겨 대정현의 송계순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섬 안의 섬이라 할 추사의 적거지는 가로 놓인 정낭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9년 간의 유배 생활은 추사로 하여금 한치의 틈도 없는 고독과 자연에의 몰입, 예술혼을 불태우게 했다. 그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사랑하는 아내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수선화를 사랑했다고 한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시름 가시고/ 너와의 선연(仙緣)은 다할 수 없어/ 호미 끝에 버려진 예사론 너를/ 오롯한 창가에 놓고 기른다.” 나는 어디 수선화를 심어놓지나 않았는지 주변을 서성거렸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섬이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너머에 숨쉬고 있는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대별왕과 소별왕, 설문대할망을 이야기하고, 삼별초의 항쟁과 4.3항쟁, 해녀들과 유배자들의 쓰린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있기를 소망한다.   * 참고문헌  고시홍,「제주섬의 소설적 변용」, 『바다와 섬의 문학과 인간』, 제주국제협의회 편, 1999.김영돈, 『제주민의 삶과 문화』, 제주문화, 1993.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1994.박종성, 「<천지왕본풀이>의 신화적 의미」, 『구비문학연구』6집, 한국구비문학회, 1998.시바 료타로, 『탐라 기행』, 학고재, 1998.오대혁, 「김통정 관련 서사물에 투영된 역사인식」, 『설화와 역사』, 집문당, 2000.이영권, 『제주역사기행』, 한겨레신문사, 2004.장주근, 『풀어쓴 한국의 신화』, 집문당, 1998.진성기, 『남국의 민담』, 형설출판사, 1976.진성기,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 민속원, 1991.현용준, 『제주도 전설』, 서문문고, 1976.현용준 현승환 역주, 『제주도 무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6.    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 전통신앙
    2019-11-04
  • [제주신화기행] ➃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삼성혈은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 시조가 태어난 곳이다. ⓒ비짓제주     제주시에서는 삼성혈을 맨 먼저 찾았다. 탐라국은 신라와 백제에 입조하여 국호와 벼슬을 받고 고려 태조 21년(938)에 고려에 속하게 되었는데 삼성혈은 그러한 역사 시대에 편입해 들어간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 시조가 태어난 곳이다.   거목들이 들어찬 뜰을 걸어 들어가면 3개의 구덩이가 나온다. 이 구덩이에서 사람이 솟아나왔다는 것은 물론 허구이다. 아마도 탐라 건국신화이자 3성 시조의 신화를 노래하던 당굿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중종 21년(1526)에 이수동 목사가 석단을 쌓고 혈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 것이 유교식 조상 제의로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매년 유교식으로 대제(大祭)가 봉헌 된다. 『성주고씨전』(1416)과 『고려사』(1454)에는 삼성혈신화가 전해진다.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인은 탄생했다. 그들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내려 왔다. 그 함을 열었더니 돌함과 붉은 띠를 두르고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가 있었다. 돌함에는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 망아지, 오곡의 씨가 있었다. 사자는 벽랑국(碧浪國)에서 신의 아들 3인에게 배필이 필요할 듯하여 세 공주를 모시고 왔노라 했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활로 거처할 땅을 점쳤다.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소와 말을 길러 살림이 풍부해졌다.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는 세 공주를 맞이한 연혼포(延婚浦. 속칭 황루알)와 결혼식을 올린 혼인지(婚姻池)가 있다.  삼성혈 가까이에 있는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중앙로로 걸어 내려갔다. 세종 30년(1448)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세워진 관덕정을 찾아가니 제주목 관아가 그 옆에 복원되고 있었다. 탐라국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정치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곳을 1991년부터 발굴하여 옛 모습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관덕정 광장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니 관아 복원만으로 채울 수 없는 곳임을 생각하게 했다.   세종 30년(1448)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세워진 관덕정은 탐라국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정치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비짓제주   관덕정 광장은 천주교도들의 횡포와 봉세관의 조세 수탈에 항거해 일어난 ‘이재수의 난’의 무대였 다. 수백 명의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는 구한말에 일어난 방성칠 난과 함께 이재수의 난을 그렸다. 관권의 핍박과 외세를 등에 업은 천주교도들의 횡포에 대한 제주민의 항쟁을 다루었다.  또한 관덕정 광장은 일제 말엽에는 5일장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4.3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3.1 시위사건이나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주검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곳도 이곳이었다.   소설가 현기영은 관덕정 광장에서 바라보았던 시국연설회, 군인과 토벌대, 그리고 목 잘린 머리통들의 기억을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붉은 동백꽃이 꽃으로 보이지 않고 눈 위에 뿌려진 선혈처럼 끔찍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역사의 소용돌이는 역사책에 고스란히 자리를 잡을 수도 있지만 그 시대의 생생한 생활사는 그 시대를 산 자의 기록에 의해서만 복원이 가능하다. 아니 4.3이 ‘사태’에서 ‘항쟁’으로 신원이 되기까지는 폭압적인 독재정권에 맞서 고문을 견디며 끝끝내 펜을 놓지 않았던 문인들의 힘이 컸다.  풍문으로만 떠돌며 쉬쉬 거리던 4·3을 최초로 공론화했던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8)은 작가를 보안사로 끌고 가 모진 고문과 책의 발매 금지를 당하게 했다.   어느 대담에서 그는 “원래 내 생각은 세 편만 쓰고 그만두려고 했습니다.…그런데 당국에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더란 말입니다. 뭐, 조사도 당하고 끌려가기도 했죠.…그러니 나는 계속 쓸 수밖에 없었고 또 소설만 쓴 게 아니라, <4.3 연구회>라는 조직도 만들었죠.…정권과 일대일로 붙을 수도 있는 것이 문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작 가세계』36, 1998.)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얼마나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되는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의 ‘너분숭이’라는 밭은 군경토벌대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320명의 영혼이 숨 쉬는 곳이 다. 한번 찾아볼 일이다.)  현기영, 오성찬, 현길언, 고시홍, 한림화, 김석범 등 4.3항쟁 시기를 살았던 소설가들의 뇌리에 각인된 피의 살육은 그들의 고통스런 글쓰기를 이끌며 참된 세상에 대한 갈망을 사람들에게 요구한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 <아버지>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잃어버린 시절> <아스팔트> <길>, 오성찬의 <연 날리기> <사포에서> <겨울산행>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 <크는 산>, 현길언의 <우리들의 조부님> <귀향> <먼 훗날> <지나는 바람에게> <귀향> <未明> <한라산>,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 고시 홍의 <도마칼> <해야 솟아라> <계명의 도시> <저승문> <유령들의 친목회> <자서전 고쳐쓰기>, 재일 작가 김석범의 <火山島>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이 ‘4.3문학’을 형성한다. ⑤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 전통신앙
    2019-10-29
  • [최제우의 사주명리 이야기] ⑤ 음(陰) 양(陽)의 이해 ➀
    최제우_배우 겸 명리학자, JTBC 예능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자로 출연중이다.   명리(命理)를 이해하기 전에 중요한건 음양(陰陽)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먼저 머릿속에 바르게 정립되어야만, 머리가 아픈 복잡한 명리(命理) 공부를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다.   음양(陰陽)은 운동이면서 언제나 공존하고 방향성을 가진다.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우리가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죽음으로 갈 때까지의 수 없이 만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의 음양(陰陽)은 그 자체를 미세하게 쪼개 구분 지을 수 있다. 음양(陰陽)을 우리가 느끼거나 보이는 것과 같이 분류를 한다면... 잠시 이것도 음양(陰陽)으로 나눈다면 눈에 보이는 것은 양(陽)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음(陰)이다.   그럼 양(陽)의 시점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 보면 이렇게 나눌 수 있겠다. 앞서 필자가 태어남과 죽음으로 예를 들어보면, 태어남은 양(陽)이요, 죽음은 음(陰)이다. 태양은 양(陽)이요, 달은 음(陰)이다. TV가 켜져 있는 것은 양(陽)이요. 꺼져 있는 것은 음(陰)이다. 물이 흐르는 것은 양(陽)이요. 고여 있는 것은 음(陰)이다. 건전지의 볼록 나온 곳은 양(陽)이요. 평평한 곳은 음(陰)이다. 말하는 건은 양(陽)이요. 듣는 것은 음(陰)이다. 움직이는 것은 양(陽)이요. 멈춰 있는 것은 음(陰)이다. 남자는 양(陽)이요. 여자는 음(陰)이다.   여기서 잠깐! 사람들이 가끔 왜 남자가 양(陽)이고 여자가 음(陰)이냐고 궁금증을 가지고 계신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남자보다 여자들이 질문을 많이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여자는 음(陰) 양(陽) 중(中) 음(陰)이기 때문에 질문이나 궁금해 하는 양(陽)의 행동 모습을 채우려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음양(陰陽)의 중심을 맞추게 되는 것이라 당연한 반면, 반대로 남자는 양(陽)이기에 질문하고 궁금해 하는 양(陽)의 모습보다는 조용히 입을 닫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 자체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남녀 사이에 연애만 보아도 사귀기 전엔 남자는 음(陰)을 채우기 위에 양(陽)의 행동을 한다. “언제 만나자”, “밥 한 번 먹자”, “영화 보자”, 여자는 반대로 음(陰)의 모습을 취하여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요즘엔 음양의 모습이 적절하게 반대가 되는 형상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 기본 원리로만 보자는 것이다.)   사귀기 전 단계에서는 남녀 음양(陰陽)의 모습을 취한다. 하지만 사귀고 나서는 음양(陰陽)이 채워진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남자는 음(陰)을 채웠기에 양(陽) 운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 자체가 중심이 되었으니, 여자는 반대로 양(陽) 운동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상황은 달라진다. 여자는 남자에게 “오늘 나 어때?” “저 여자가 예뻐? 내가 예뻐?” “내가 해준 거 맛있어?”처럼 물어보는 반면 남자의 대답은 음(陰)의 모습으로 고개만 끄덕이거나 단답형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남녀의 신체적인 부분으로만 음양을 나누어 볼 때 생식기 구조만 보아도 음양(陰陽)의 이치를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 운세
    2019-10-28
  • [제주 신화기행] ➂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➁편에서 이어집니다. 제주 섬은 순수한 토착민들만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다. 천지왕본풀이나 뒤에 보게 될 삼성혈신화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섬은 토착민들이 유입된 외지인들과 더불어 만들어간 공간이다. 제주에 들어온 시기를 보면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조선 중기 당쟁 시기로 중심부에서 쫓겨 들어온 사람들이다. 당신 본풀이들이 말하는 신의 내력은 유입과 이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상의 창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설문대할망(선문데할망, 설명두할망, 세명뒤할망이라고도 전한다.)이라는 거대한 여신의 제주 섬 창조로 이어진다. 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발이 바다에 닿아 물장난을 할 정도로 거대했다. 할망은 밋밋했던 섬을 아름답게 꾸미기 시작했다. 치마폭에 흙을 날라 한라산을 만들고, 구멍 난 치마폭의 흙으로 초원 위에 오름들을 만들었다. 성산 일출봉과 식산봉에 양 발을 디디고 앉아 시원스레 눈 오줌으로 소섬[牛島]을 만들었다. 그런데 섬에 갇혀 살던 사람들이 육지로 다리를 놓아 달라는 부탁에 할망은 속옷 한 벌을 요구했다. 거친 밥을 먹으며 살던 섬사람들은 100필의 명주에서 1필이 모자라는 바람에 속옷을 완성하지 못했고, 다리를 놓아가다 그만 둔 흔적이 조천 앞바다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렇게 제주 섬을 창조한 할망은 바다고기를 잘 잡는 할으방을 만나 윤 3월 16일 500형제 자식을 낳고 고기를 함께 잡으며 살았다. 그런데 식구가 많은데다 흉년이 들어 할망은 자식들에게 죽이라도 끓일 양식을 구해 오라고 타일러 보냈다. 죽을 끓이느라 어마어마하게 큰 가마솥에 불을 때다 할망은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오백 형제는 여느 때보다 맛있게 죽을 먹었고, 막내가 솥을 휘젓다 사람의 뼈를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 고기를 먹은 걸 안 이들은 통탄을 하다 모두 바위로 굳어버렸고, 한라산 영실(靈室)의 수많은 기암괴석이 바로 그것이라 한다. 가을 단풍을 만끽하려면 한라산 서측의 이곳 영실을 찾으면 좋다. 거기에서 오백장군(오백나한) 바위를 따라 흐르는 바람을 느껴보기 바란다.  이처럼 설문대할망 설화에는 섬사람들의 육지를 향한 지향과 좌절감, 그리고 척박한 땅과 바다를 상대로 싸우며 견뎌야 했던 지독한 가난이 슬프게 아로새겨져 있다. 고립된 섬에 살던 제주인들은 외지인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면 깊숙이 육지를 향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기팔은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아름다운 것은/ 내가 건널 수 없는 수평선/ 끝끝내 닿지못할/ 그리움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먼 바다 푸른 섬 하나)라고 노래했다. 그래서 문충성은 “제주섬은 가난과 한숨에 흔들리고 날마다/ 흔들리는 제주섬 지키는 설문대할망은/ 제주섬 사람들 수천 년 살아온/ 전설이 되고 바람이 되고 영욕이 되고/ 이어도를 꿈꾸는 꿈이 되고 노래가 되고”(설문대할망)라며 섬사람들의 슬픔과 꿈이 스며든 존재로 설문대할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다. 신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신들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본풀 이가 굿의 현장에 있다. 천지왕본풀이를 비롯한 천지와 일월, 산과 바다, 생사와 농경, 어로, 빈부 등을 지배하는 12편의 일반신본풀이, 마을의 수호신인 당신의 내력을 말하는 당신본풀 이, 일족(一族)의 수호신을 말하는 조상본풀이가 섬을 지키고 있다. 이 신들의 노래는 346개나 되는 신당에서 불려진다. 그 가운데 제주의 토착신인 수렵을 생업으로 하던 남신인 한라 산신을 모시는 와흘본향당이나 제주 신당의 원조로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받은 송당본향당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신당들은 인적이 뜸한 곳에 돌담들을 쌓아 만든 정말 소박한 곳이다. 생각하니, 타다 남은 양초와 지전을 태운 냄새, 향내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신당 안에서 무서워 떨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거친 산, 바다와 싸우던 제주 민중의 소박한 기원이 신당에는 살아 있다. 새마을운동 시기 미신타파를 부르짖으며 민속문화재라 할 신당을 파괴 하던 때가 있었다. 그 와중에 현용준, 진성기 선생님 등이 가까스로 챙겨 놓은 신당과 무가들은 제주 신화의 특수성과 우수성을 전세계에 한껏 뽐내게 한다. 그리고 그곳을 채우던 심방들의 노랫가락이 아직 살아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현용준 선생님은 『한라산 오르듯이』(각, 2003)이라는 자전수필을 통해 제주 신화의 보존 과정을 흥미롭게 알려주셨다. ➃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문화평론가, 시인)  
    • 오피니언
    • 기명칼럼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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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제우의 사주명리 이야기] ⑦ 아는 만큼 보인다!
      최제우_배우 겸 명리학자, JTBC 예능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자로 출연중이다.   어제 상담 오신 분들이 시작 전에 이런 얘기를 하셨다. 저 용신(龍神) 뽑아 주나요?   (여기서 용신이란 명리(命理)에서 자기에게 없는 오행(五行)을 얘기하는데 뽑는 기준도 여러 가지다. 그것을 다 얘기하면 수업이 될 것 같으니 간단히 이해하는 정도로만 하고) 용신(龍神)이 들어오면 대박나지 않아요? 이런 질문은 어느 정도 사주(四柱)를 자주 보러 다니거나 관심을 조금 가진 사람들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요즘 시대가 참으로 무섭다. 명리(命理)를 공부하면 만세력(萬歲曆)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절기(節氣)를 기반으로 하여 날짜를 간지(干支)로 풀어놓은 것인데 연월일시(年月日時)에 간지(干支)를 사주(四柱)로 세우고, 대운(大運)을 나열하는 것이 명리(命理)의 기본이다. 요즘 시대가 무섭다는 말은 사주(四柱) 세우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어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에 자신의 생년월일시만 넣으면 자동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만세력(萬歲曆)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이것저것 까지 적는 시간까지 하면 보통 5~10분정도 소요된다. 필자도 현재는 만세력(萬歲曆)을 책으로 뽑지는 않는다. 그 시간을 차라리 상담하는 시간에 더 할애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 판단하기에...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아직 전문적인 기초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만세력(萬歲曆)을 뽑을 수 있다는 점. 거기에 각자 알고 있는 명리(命理) 지식을 대입한다는 것이 부조리에 시작이 되는 것이다. 난 ‘木’이 없어서 ‘木’ 있는 남자를 만나야 돼. 그러면서 지금 현재 썸 타고 있는 남자나 주변인들의 연월일시를 넣어 사주(四柱) 안에 ‘木’만 찾아 삼만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치에 아주 어긋나는 해석은 아니다.   다만 본인에게 ‘木’이 없어서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나, 극복할 수 없는 부분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없는 ‘木’만 채우게 되면 만사형통이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없는 건 없는 것이다. 운에서 도와주지 못하면 어찌되었건 채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의자에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이 그 오행(五行)이 들어왔다고 해서 걷거나 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에 늘 갈망하고, 갈증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즉 재산도 100억이 있고, 가족도 행복 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자신은 늘 의자에서 일어나 걷고, 뛰는 것이 본인 인생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명리(命理)의 좋은 도구를 혹세무민(惑世誣民) 하여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오늘 사실 木 火 土 金 水의 비밀을 칼럼 주제로 노트북을 열었으나 木을 떠올리다 보니 어제의 일이 생각나 갑작스럽게 주제가 바뀌게 되었다.  아직 명리(命理)에 무한한 세계를 손바닥만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필자도 혹세무민(惑世誣民) 하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분발해야겠다.   
    • 운세
    2019-11-07
  • [제주신화기행] ⑥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최종회)
    성산일출봉 인근마을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⑤편에서 이어집니다. 김녕에서 가까운 세화리와 하도리를 지났다. 이곳은 1930년대 잠녀(潛女)들의 투쟁을 그린 『껍질과 속살』, 『바람타는 섬』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해녀조합 간부들인 일본인들이 가혹하게 잠녀들을 수탈 했고, 이에 대한 저항을 다룬 소설들이다.  해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잠녀는 제주도 바닷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나는 세화리와 하도리를 뒤로 하고 차를 몰아 성산 일출봉 터진목에서 그들을 만났다. 까만 잠수복을 한 그들은 사진을 찍는 나를 웃으며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박으로 정성들여 만든 테왁을 썼는데 지금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것을 쓰고 있다. 조금 거리를 두고 해녀들이 물에 들었다.  1936년 21세 때부터 제주도를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泉端一)의 『제주도』에는 “바가 지에 끈이 달린 테왁과 조개 딸 때 쓰는 갈퀴를 들고 물안경 쓰고 자맥질을 한다.…… 똑바로 선 자세로 물속에 얼굴을 박고, 목표물을 가늠한 다음 발을 힘 있게 굽혀 가슴께로 끌어당기고 머리를 잽싸게 물속에 디밀어, 몸을 뻗고 발을 공중에 흔들어 침하속도를 높인 다음, 신체가 완전히 물속에 잠기면 발을 차듯이 움직이고, 손으로 물을 양옆으로 가르면서 가라앉는다. 한 번의 잠수를 끝낼 때는, 몸을 꺾은 자세로 다리를 아래로 내려서 힘차게 바닥을 차고 솟구친다. 수면에 뜨는 것과 동시에 ‘휘유’ 휘파 람을 부는 것이다.”라고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 휘파람을 제주에서는 ‘숨비소리(숨비 질소리)’라고 한다. 이 소리를 내고는 물질하는 친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해녀들은 1900년대 초부터 섬 밖으로 벌이를 나갔다고 한다. 일본, 육지 연안, 강원도, 심지어는 청진 까지 갔다가 기선을 타고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 청도(靑島)까지도 갔다고 한다.   현기영의 거룩한 생애를 학창시절에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소설은 해녀 ‘간난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녀는 일제시대 때 잠녀의 딸로 태어나 17살에 상꾼 잠녀가 되어 빼앗긴 밭을 되찾는다. 놀음에 미친 시아버지 때문에 무너진 집안을 그녀는 잠녀 일을 하여 일으 키고, 어린 신랑을 읍내 공립학교까지 보낸다. 그리고 일제 말엽에는 징용에 끌려가게 된 남편을 이끌고 육지로 물질 나가 금강산 근처에서 8.15 광복을 맞는다. 마침내 미군과 소련군이 지키는 38선을 넘어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4.3항쟁 시기에 한 많은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 졌다. 강인한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너무도 서러웠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 뒤로는 일출봉이 장엄하게 서 있었고, 파도는 거칠었다. 이곳은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신경숙의 소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표선민속촌과 성읍 민속마을에 들러 제주 도세기(돼지)도 보고, 올레며 정낭도 보며 옛 기억을 더듬었 다. 내 유년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갈옷을 파는 가게 앞에서도 한참을 서성거렸다. 푸른 감으로 물을 들이는 갈옷은 여름철 뙤약볕에서 김을 맬 때면 이만한 옷이 없었다. 땀도잘 흡수하고 바람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차를 달려 서귀포에서 이중섭이 거닐던 천지연폭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바로 추사 적거지로 향했다.  추사는 대정 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는 처음 화북진에 도착한 후 걸음을 옮겨 대정현의 송계순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섬 안의 섬이라 할 추사의 적거지는 가로 놓인 정낭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9년 간의 유배 생활은 추사로 하여금 한치의 틈도 없는 고독과 자연에의 몰입, 예술혼을 불태우게 했다. 그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사랑하는 아내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수선화를 사랑했다고 한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시름 가시고/ 너와의 선연(仙緣)은 다할 수 없어/ 호미 끝에 버려진 예사론 너를/ 오롯한 창가에 놓고 기른다.” 나는 어디 수선화를 심어놓지나 않았는지 주변을 서성거렸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섬이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너머에 숨쉬고 있는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대별왕과 소별왕, 설문대할망을 이야기하고, 삼별초의 항쟁과 4.3항쟁, 해녀들과 유배자들의 쓰린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있기를 소망한다.   * 참고문헌  고시홍,「제주섬의 소설적 변용」, 『바다와 섬의 문학과 인간』, 제주국제협의회 편, 1999.김영돈, 『제주민의 삶과 문화』, 제주문화, 1993.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1994.박종성, 「<천지왕본풀이>의 신화적 의미」, 『구비문학연구』6집, 한국구비문학회, 1998.시바 료타로, 『탐라 기행』, 학고재, 1998.오대혁, 「김통정 관련 서사물에 투영된 역사인식」, 『설화와 역사』, 집문당, 2000.이영권, 『제주역사기행』, 한겨레신문사, 2004.장주근, 『풀어쓴 한국의 신화』, 집문당, 1998.진성기, 『남국의 민담』, 형설출판사, 1976.진성기,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 민속원, 1991.현용준, 『제주도 전설』, 서문문고, 1976.현용준 현승환 역주, 『제주도 무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6.    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 전통신앙
    2019-11-04
  • [제주신화기행] ➃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삼성혈은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 시조가 태어난 곳이다. ⓒ비짓제주     제주시에서는 삼성혈을 맨 먼저 찾았다. 탐라국은 신라와 백제에 입조하여 국호와 벼슬을 받고 고려 태조 21년(938)에 고려에 속하게 되었는데 삼성혈은 그러한 역사 시대에 편입해 들어간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 시조가 태어난 곳이다.   거목들이 들어찬 뜰을 걸어 들어가면 3개의 구덩이가 나온다. 이 구덩이에서 사람이 솟아나왔다는 것은 물론 허구이다. 아마도 탐라 건국신화이자 3성 시조의 신화를 노래하던 당굿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중종 21년(1526)에 이수동 목사가 석단을 쌓고 혈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 것이 유교식 조상 제의로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매년 유교식으로 대제(大祭)가 봉헌 된다. 『성주고씨전』(1416)과 『고려사』(1454)에는 삼성혈신화가 전해진다.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인은 탄생했다. 그들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내려 왔다. 그 함을 열었더니 돌함과 붉은 띠를 두르고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가 있었다. 돌함에는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 망아지, 오곡의 씨가 있었다. 사자는 벽랑국(碧浪國)에서 신의 아들 3인에게 배필이 필요할 듯하여 세 공주를 모시고 왔노라 했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활로 거처할 땅을 점쳤다.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소와 말을 길러 살림이 풍부해졌다.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는 세 공주를 맞이한 연혼포(延婚浦. 속칭 황루알)와 결혼식을 올린 혼인지(婚姻池)가 있다.  삼성혈 가까이에 있는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중앙로로 걸어 내려갔다. 세종 30년(1448)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세워진 관덕정을 찾아가니 제주목 관아가 그 옆에 복원되고 있었다. 탐라국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정치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곳을 1991년부터 발굴하여 옛 모습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관덕정 광장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니 관아 복원만으로 채울 수 없는 곳임을 생각하게 했다.   세종 30년(1448)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세워진 관덕정은 탐라국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정치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비짓제주   관덕정 광장은 천주교도들의 횡포와 봉세관의 조세 수탈에 항거해 일어난 ‘이재수의 난’의 무대였 다. 수백 명의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는 구한말에 일어난 방성칠 난과 함께 이재수의 난을 그렸다. 관권의 핍박과 외세를 등에 업은 천주교도들의 횡포에 대한 제주민의 항쟁을 다루었다.  또한 관덕정 광장은 일제 말엽에는 5일장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4.3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3.1 시위사건이나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주검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곳도 이곳이었다.   소설가 현기영은 관덕정 광장에서 바라보았던 시국연설회, 군인과 토벌대, 그리고 목 잘린 머리통들의 기억을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붉은 동백꽃이 꽃으로 보이지 않고 눈 위에 뿌려진 선혈처럼 끔찍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역사의 소용돌이는 역사책에 고스란히 자리를 잡을 수도 있지만 그 시대의 생생한 생활사는 그 시대를 산 자의 기록에 의해서만 복원이 가능하다. 아니 4.3이 ‘사태’에서 ‘항쟁’으로 신원이 되기까지는 폭압적인 독재정권에 맞서 고문을 견디며 끝끝내 펜을 놓지 않았던 문인들의 힘이 컸다.  풍문으로만 떠돌며 쉬쉬 거리던 4·3을 최초로 공론화했던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8)은 작가를 보안사로 끌고 가 모진 고문과 책의 발매 금지를 당하게 했다.   어느 대담에서 그는 “원래 내 생각은 세 편만 쓰고 그만두려고 했습니다.…그런데 당국에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더란 말입니다. 뭐, 조사도 당하고 끌려가기도 했죠.…그러니 나는 계속 쓸 수밖에 없었고 또 소설만 쓴 게 아니라, <4.3 연구회>라는 조직도 만들었죠.…정권과 일대일로 붙을 수도 있는 것이 문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작 가세계』36, 1998.)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얼마나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되는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의 ‘너분숭이’라는 밭은 군경토벌대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320명의 영혼이 숨 쉬는 곳이 다. 한번 찾아볼 일이다.)  현기영, 오성찬, 현길언, 고시홍, 한림화, 김석범 등 4.3항쟁 시기를 살았던 소설가들의 뇌리에 각인된 피의 살육은 그들의 고통스런 글쓰기를 이끌며 참된 세상에 대한 갈망을 사람들에게 요구한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 <아버지>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잃어버린 시절> <아스팔트> <길>, 오성찬의 <연 날리기> <사포에서> <겨울산행>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 <크는 산>, 현길언의 <우리들의 조부님> <귀향> <먼 훗날> <지나는 바람에게> <귀향> <未明> <한라산>,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 고시 홍의 <도마칼> <해야 솟아라> <계명의 도시> <저승문> <유령들의 친목회> <자서전 고쳐쓰기>, 재일 작가 김석범의 <火山島>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이 ‘4.3문학’을 형성한다. ⑤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 전통신앙
    2019-10-29
  • [최제우의 사주명리 이야기] ⑤ 음(陰) 양(陽)의 이해 ➀
    최제우_배우 겸 명리학자, JTBC 예능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자로 출연중이다.   명리(命理)를 이해하기 전에 중요한건 음양(陰陽)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먼저 머릿속에 바르게 정립되어야만, 머리가 아픈 복잡한 명리(命理) 공부를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다.   음양(陰陽)은 운동이면서 언제나 공존하고 방향성을 가진다.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우리가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죽음으로 갈 때까지의 수 없이 만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의 음양(陰陽)은 그 자체를 미세하게 쪼개 구분 지을 수 있다. 음양(陰陽)을 우리가 느끼거나 보이는 것과 같이 분류를 한다면... 잠시 이것도 음양(陰陽)으로 나눈다면 눈에 보이는 것은 양(陽)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음(陰)이다.   그럼 양(陽)의 시점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 보면 이렇게 나눌 수 있겠다. 앞서 필자가 태어남과 죽음으로 예를 들어보면, 태어남은 양(陽)이요, 죽음은 음(陰)이다. 태양은 양(陽)이요, 달은 음(陰)이다. TV가 켜져 있는 것은 양(陽)이요. 꺼져 있는 것은 음(陰)이다. 물이 흐르는 것은 양(陽)이요. 고여 있는 것은 음(陰)이다. 건전지의 볼록 나온 곳은 양(陽)이요. 평평한 곳은 음(陰)이다. 말하는 건은 양(陽)이요. 듣는 것은 음(陰)이다. 움직이는 것은 양(陽)이요. 멈춰 있는 것은 음(陰)이다. 남자는 양(陽)이요. 여자는 음(陰)이다.   여기서 잠깐! 사람들이 가끔 왜 남자가 양(陽)이고 여자가 음(陰)이냐고 궁금증을 가지고 계신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남자보다 여자들이 질문을 많이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여자는 음(陰) 양(陽) 중(中) 음(陰)이기 때문에 질문이나 궁금해 하는 양(陽)의 행동 모습을 채우려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음양(陰陽)의 중심을 맞추게 되는 것이라 당연한 반면, 반대로 남자는 양(陽)이기에 질문하고 궁금해 하는 양(陽)의 모습보다는 조용히 입을 닫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 자체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남녀 사이에 연애만 보아도 사귀기 전엔 남자는 음(陰)을 채우기 위에 양(陽)의 행동을 한다. “언제 만나자”, “밥 한 번 먹자”, “영화 보자”, 여자는 반대로 음(陰)의 모습을 취하여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요즘엔 음양의 모습이 적절하게 반대가 되는 형상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 기본 원리로만 보자는 것이다.)   사귀기 전 단계에서는 남녀 음양(陰陽)의 모습을 취한다. 하지만 사귀고 나서는 음양(陰陽)이 채워진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남자는 음(陰)을 채웠기에 양(陽) 운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 자체가 중심이 되었으니, 여자는 반대로 양(陽) 운동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상황은 달라진다. 여자는 남자에게 “오늘 나 어때?” “저 여자가 예뻐? 내가 예뻐?” “내가 해준 거 맛있어?”처럼 물어보는 반면 남자의 대답은 음(陰)의 모습으로 고개만 끄덕이거나 단답형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남녀의 신체적인 부분으로만 음양을 나누어 볼 때 생식기 구조만 보아도 음양(陰陽)의 이치를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 운세
    2019-10-28
  • [제주 신화기행] ➂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➁편에서 이어집니다. 제주 섬은 순수한 토착민들만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다. 천지왕본풀이나 뒤에 보게 될 삼성혈신화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섬은 토착민들이 유입된 외지인들과 더불어 만들어간 공간이다. 제주에 들어온 시기를 보면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조선 중기 당쟁 시기로 중심부에서 쫓겨 들어온 사람들이다. 당신 본풀이들이 말하는 신의 내력은 유입과 이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상의 창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설문대할망(선문데할망, 설명두할망, 세명뒤할망이라고도 전한다.)이라는 거대한 여신의 제주 섬 창조로 이어진다. 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발이 바다에 닿아 물장난을 할 정도로 거대했다. 할망은 밋밋했던 섬을 아름답게 꾸미기 시작했다. 치마폭에 흙을 날라 한라산을 만들고, 구멍 난 치마폭의 흙으로 초원 위에 오름들을 만들었다. 성산 일출봉과 식산봉에 양 발을 디디고 앉아 시원스레 눈 오줌으로 소섬[牛島]을 만들었다. 그런데 섬에 갇혀 살던 사람들이 육지로 다리를 놓아 달라는 부탁에 할망은 속옷 한 벌을 요구했다. 거친 밥을 먹으며 살던 섬사람들은 100필의 명주에서 1필이 모자라는 바람에 속옷을 완성하지 못했고, 다리를 놓아가다 그만 둔 흔적이 조천 앞바다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렇게 제주 섬을 창조한 할망은 바다고기를 잘 잡는 할으방을 만나 윤 3월 16일 500형제 자식을 낳고 고기를 함께 잡으며 살았다. 그런데 식구가 많은데다 흉년이 들어 할망은 자식들에게 죽이라도 끓일 양식을 구해 오라고 타일러 보냈다. 죽을 끓이느라 어마어마하게 큰 가마솥에 불을 때다 할망은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오백 형제는 여느 때보다 맛있게 죽을 먹었고, 막내가 솥을 휘젓다 사람의 뼈를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 고기를 먹은 걸 안 이들은 통탄을 하다 모두 바위로 굳어버렸고, 한라산 영실(靈室)의 수많은 기암괴석이 바로 그것이라 한다. 가을 단풍을 만끽하려면 한라산 서측의 이곳 영실을 찾으면 좋다. 거기에서 오백장군(오백나한) 바위를 따라 흐르는 바람을 느껴보기 바란다.  이처럼 설문대할망 설화에는 섬사람들의 육지를 향한 지향과 좌절감, 그리고 척박한 땅과 바다를 상대로 싸우며 견뎌야 했던 지독한 가난이 슬프게 아로새겨져 있다. 고립된 섬에 살던 제주인들은 외지인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면 깊숙이 육지를 향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기팔은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아름다운 것은/ 내가 건널 수 없는 수평선/ 끝끝내 닿지못할/ 그리움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먼 바다 푸른 섬 하나)라고 노래했다. 그래서 문충성은 “제주섬은 가난과 한숨에 흔들리고 날마다/ 흔들리는 제주섬 지키는 설문대할망은/ 제주섬 사람들 수천 년 살아온/ 전설이 되고 바람이 되고 영욕이 되고/ 이어도를 꿈꾸는 꿈이 되고 노래가 되고”(설문대할망)라며 섬사람들의 슬픔과 꿈이 스며든 존재로 설문대할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다. 신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신들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본풀 이가 굿의 현장에 있다. 천지왕본풀이를 비롯한 천지와 일월, 산과 바다, 생사와 농경, 어로, 빈부 등을 지배하는 12편의 일반신본풀이, 마을의 수호신인 당신의 내력을 말하는 당신본풀 이, 일족(一族)의 수호신을 말하는 조상본풀이가 섬을 지키고 있다. 이 신들의 노래는 346개나 되는 신당에서 불려진다. 그 가운데 제주의 토착신인 수렵을 생업으로 하던 남신인 한라 산신을 모시는 와흘본향당이나 제주 신당의 원조로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받은 송당본향당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신당들은 인적이 뜸한 곳에 돌담들을 쌓아 만든 정말 소박한 곳이다. 생각하니, 타다 남은 양초와 지전을 태운 냄새, 향내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신당 안에서 무서워 떨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거친 산, 바다와 싸우던 제주 민중의 소박한 기원이 신당에는 살아 있다. 새마을운동 시기 미신타파를 부르짖으며 민속문화재라 할 신당을 파괴 하던 때가 있었다. 그 와중에 현용준, 진성기 선생님 등이 가까스로 챙겨 놓은 신당과 무가들은 제주 신화의 특수성과 우수성을 전세계에 한껏 뽐내게 한다. 그리고 그곳을 채우던 심방들의 노랫가락이 아직 살아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현용준 선생님은 『한라산 오르듯이』(각, 2003)이라는 자전수필을 통해 제주 신화의 보존 과정을 흥미롭게 알려주셨다. ➃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문화평론가, 시인)  
    • 오피니언
    • 기명칼럼
    2019-10-25
  • [제주 신화기행] ➁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제주에 전하는 창세신화인 천지왕본풀이는 무당들의 노랫가락에 실려 9편 정도가 전한다. 태초에 세상은 하늘과 땅이 서로 뒤섞여 처음과 끝도 없고 안과 밖도 없었으며, 삶과 죽음, 선과 악도 없는 혼돈의 상태였다. 하늘에서 푸른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검은 이슬이 솟아올랐다. 하늘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땅은 축시(丑時)에 열렸으며, 사람은 인시(寅時)에 태어났다. 이렇게 세상이 창조되었지만 천지개벽의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거인이 나타났다. 그의 앞이마에서는 두 개의 해가, 뒤 이마에서는 두 개의 달이 나타났다.   동물들이 말을 하고, 귀신과 사람의 구분이 없는 혼란은 계속되었다. 게다가 수명장자(쉬맹이)가 사나운 소, 말, 개를 앞세워 사람들이 거둔 소출을 독차지하며 사람들을 굶어죽게 하였다. 이를 안 천지왕은 번개장군과 벼락장군, 화덕진군과 풍우도사, 일만 군사를 이끌고 가 머리에 쇠테를 씌워 수명장자를 죽이려 했다. 그런데 그는 종을 불러 도끼로 머리에 씌워진 쇠테를 깨라고 명령하였다. 그 모습을 본 천지왕은 쇠테를 풀어 목숨만은 살려주었다.  지상에 잠시 머물던 천지왕은 지상의 총명부인과 결혼하여 대별왕과 소별왕을 낳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대별왕과 소별왕은 점점 자라났는데, 친구들에게 애비 없는 자식이라 따돌림을 받았다. 형제는 어머니에게 떼를 써 마침내 박 넝쿨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 천지왕은 큰아들 대별왕에게 이승을, 작은아들 소별왕에게 저승을 다스리라 했다. 작은아들은 수수께끼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이승을 차지하자고 형에게 제안했다. 마음 착한 형은 동생의 제안을 받아들여 내기를 했는데 두 번 다 형이 이기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소별왕은 꽃을 누가 더 잘 키우는지를 내기하고는 형이 잠든 사이에 잘 자라는 형의 꽃을 자신의 꽃과 바꿔버렸다.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승에서는 제2의 혼돈이 계속되었고 그 혼돈을 처리할 능력이 소별왕에게는 없었다. 할 수 없이 형의 도움을 얻어 해와 달을 하나씩 활로 쏘아 없앴다. 초목과 짐승은 소나무 껍질 가루로 눌러 말을 못하게 했다. 귀신과 생사람은 저울로 무게를 달아 보아 백 근을 넘으면 인간으로 못 넘으면 귀신으로 처리했다. 자연의 질서가 바로 잡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승으로 형이 떠나자 또다시 살인, 도둑, 간음 등 무질서가 여전했다.  신화학적으로 보면 천지왕은 불과 쇠를 다루는 외래적 존재로 제주 섬에 있던 수신계(水神系)의 수명 장자를 벌하였고, 그의 후계인 두 아들로 하여금 섬을 지배하게 하였다는 것으로 읽힌다. 두 개의 해는 극심한 더위와 가뭄을, 두 개의 달은 극심한 추위나 홍수를 의미한다. 그것의 조정은 곧 농작물의 풍작을 뜻한다. ➂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명칼럼
    2019-10-24
  • [최제우의 사주명리 이야기] ➃ 친구 따라 갔다 명리와 얽힌 인연! (EP.1)
    최제우 배우 겸 명리학자, JTBC 예능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자로 출연중이다.   3년 전...   2016년 여름이었다. 외국에서 오랜만에 들어온 친구와 밥을 먹고 있는데,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은 한국 들어간 김에 어머님이 아시는 명리학 선생님께 이야기 해 놓았으니 가서 말씀만 듣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필자도 그때는 관심이 있던 터라 친구랑 같이 예약을 하고 싶었지만 상담비가 너무 비싸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고, 한 번도 명리에 경험이 없었던 친구에게 가서 무엇을 얘기 하더라도 절대 리액션을 보이지 말라고 훈수를 두고 함께 찾아갔다.   상담을 시작하고 30분 뒤 그 분에게 리액션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ㅜㅜ   “그걸 어떻게 아세요? 거기에 그런 것도 나오나요?”   너무나 신기했다. 여덟 글자만 보고 사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그 분이 너무 신기했다.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분이 나와 눈을 마주쳤는데, 뜬금없이 필자에게 “이상한 놈이네. 20대에 죽었어야 하는 놈이 왜 아직 살아있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심한 모멸감에 화를 내면서 “아니 아무리 공부하신 분이라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해도 됩니까?”라며 항의를 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필자에게 “왜, 아니야?”라고 되물으셨다. 더 놀란 나는 차마 내 입에서 아니라고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시선을 돌렸다.   이야기가 끝나고 그분은 필자에게 이 공부에 소질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필자는 단호하게 “정해진 운명대로 산다는 걸 인정할 수 없을 뿐더러 있다하더라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열심히 노력해서 살면 정해진 운명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분은 필자에게 “그래 열심히 살아라!”라며 비아냥거리듯 웃는게 아닌가?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그런 표정으로 일침을 당해 본적이 처음이었다.   필자는 그 이후 머릿속에 그날 그 상황 그분의 표정이 몇 주간 맴돌았다. 결국 고심 끝에 찾아갔다.    
    • 운세
    2019-10-23
  • [최제우의 사주명리 이야기] ③ 명리(命理)에 대한 오해?
      최제우 배우 겸 명리학자, JTBC 예능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자로 출연중이다.     명리(命理), 또는 사주팔자(四柱八字)를 공부한다고 하면 처음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거 어려운 거 아니야? 나도 한번 풀어줘, 근데 그거 한자 많이 알아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질문을 한다.   필자도 처음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어렵고 많은 한자들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공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무턱대고 외우기만 했다. 그리고 그것을 외워야 명리(命理)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명리(命理)는 한자(漢字) 스물 두 글자만 알면 공부할 수 있다. 사실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게 사실이다.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申) 임(壬) 계(癸) 10자와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 등 천간(天干) (하늘)의 10글자와 지지 (땅) 12글자만 알면 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누가 갑(甲)질이야?” 또는 계약서에서 쓰는 갑(甲) 을(乙) 관계가 천간(天干)의 글자이다. 지지(地支)는 우리가 아는 동물 12간지 이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을 듣기만 했지 보지는 못했지만, TV애니메이션 ‘꾸러기 수비대’를 본 사람이라면 “아~” 하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명리(命理)는 이 스물 두 글자 속에 많은 비밀을 숨겨 놓았다. 그것을 현명하게, 시대에 맞게 푸는 것이 명리학자들의 숙명(宿命)이라고 할 수 있다.   명리(命理)를 공부하기 이전 이 간지(干支)를 외우고 싶어 “쥐 소 범 토 용 뱀 말~~~ 양 원 닭 개~ 돼지”라고 노래 부르듯 흥얼거리며 외웠던 기억이 난다.  
    • 운세
    2019-10-22
  • [최제우의 사주명리 이야기] ➁사주팔자(四柱八字), 명리(命理), 연월일시(年月日時)
        최제우_배우 겸 명리학자, JTBC 예능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자로 출연중이다.          목숨(命)에 다스릴(理), 명리(命理)!   명리(命理)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인생철학(人生哲學)이라고 하면 좀 쉬울까? 그냥 더 쉽게 얘기한다면 사람의 인생을 연구하는 학문(學文)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숨을 트는 그 순간 우주기운을 머금고 태어난다. 그 우주의 기운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공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풍선만 보더라도 공기가 들어가면 무게와 부피가 존재 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한 사람의 성향, 성격, 타고난 개인적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태어나면서 부여된 본인의 무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머리를 무기로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몸을 무기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머리를 쓰고 그것을 무기로 삼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운동선수보다 운동코치, 감독, 분석가가 더 이롭다. 반대로 몸을 무기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코치를 한다면 아마 발을 동동 구르며 답답해 할 것이다.   오래전 옛 선인들은 이러한 우주의 기운을 자연의 현상을 빗대어 글자화 하였다. 사주팔자(四柱八字)는 넉(四) 기둥(柱) 에 여덟(八) 글자(字) 즉 4개에 기둥에 8개에 글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사주팔자(四柱八字)이다.   또는 년월일시(年月日時)로 불리는데, 이는 사람의 태어난 년도, 달월, 날일, 시. 즉 생년월일에 시간까지 포함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기해년(己亥年)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8글자 중 2글자는 이미 정해진 것이다.   명리(命理)는 사람의 인생을 연구하는 것이고, 연구의 도구로 쓰이는 게 사주팔자(四柱八字)이다. 그리고 그 4가지의 기둥의 명칭을 연월일시(年月日時)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 운세
    2019-10-21
  • [최제우의 사주명리 이야기] ➀ 내게 너무 낯선 단어 명리학
    최제우_배우 겸 명리학자, JTBC 예능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자로 출연중이다.   텐션 업인 자리에서 명리학? 이라고 하면... 음 뭐랄까?   요새 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로 분위기가 바뀐다. 왜냐면 명리학이라고 하면 아직은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낯설다’라는 의미이가 강하기 때문이다.   낯선 단어에 사람들은 어리둥절 반응을 하다가 누군가 “어 알아 그거 맞지? 사주팔자?” 라고 하면 그중 누군가 “아~~~~~~~~~~~~~~~” 이 물결에서 표정의 변화가 갑자기 심하게 나타나면서 뽐내면서 ) “점!”이라고 하면 빗발치듯 그때부터 여기저기서 “난 남자 복이 없대” “난 재물 복이 없다던데...” “야! 난 씨x 다 안 좋대”하면서 몇 번 접한 분들의 주도하에 갑분싸?의 분위기를 마치 본인이 숨겨둔 단골 음식점의 메인 안주가 나와 자랑하듯 어깨 뽕이 올라간 상태로 다시 텐션 업을 시킨다.   현실이다. 그것이 현재 진실이기도 하다. 듣지 않은 얘기를 자신의 메인 안주처럼 얘기 할 수는 없으니까. 갑자기! 내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은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대중들에게는 낯설고, 샤머니즘과 같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과 또 그것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없는 논문이나 증거 제시도 없다. 그마나 인정해 주시는 분들은 고급표현(?)으로 “통계학 맞죠?”라고 고맙게 얘기해 주신다.   과학적 이론, 답을 요구하는 정답론으로 보면 아직 명리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좋은 학문이고, 필요한 학문이지만, 확답을 필요로 하고,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살아가는 지금 현재 사회관점에선 명리는 그것과 다른 색깔을 가지기에 아직은 음지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기를 보내는 것 같다.  
    • 운세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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