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1-1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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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들이 ‘쇠코뚜레’를 대문에 걸어둔 이유
      코뚜레를 한 소의 모습 ⓒ영화 ‘워낭소리’ 스틸컷   [MS뉴스=이슬기 기자] 소의 코뚜레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   쇠코뚜레란 소의 코청을 뚫어 끼우는 둥근 나무 테를 말한다. 힘이 강하고 고집이 센 소를 쉽게 제압하여 다루기 위한 도구로, 이를 잡아당기면 소는 강한 통증을 느끼기 때문에 농부가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농가에서는 소에게 코뚜레를 채우는 날로 대개 양기가 세고 잡귀의 범접이 없는 단옷날을 많이 선택한다. 나무송곳으로 코 사이를 뚫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로 인해 생겨난 상처는 일주일가량 지나면 아물게 된다.   코뚜레가 작아지거나 금이 가면 새것으로 갈아 채운다. 그러나 사용하던 코뚜레는 버리지 않는다. 크고 힘이 센 소를 속박시킨 코뚜레에는 그 세월만큼이나 강한 주력이 담겨있다고 예로부터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사용된 코뚜레는 대문이나 집 안에 걸어 악귀의 침범을 막거나, 집안에 들어온 복이나 부를 붙잡아두는 용도로 이용되어왔다. 복조리와 비슷한 의미로 정초에 대문이나 방문에 걸기도 했다. 소의 건강을 빌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외양간 처마에 꽂아 두는 일도 있었다.   이렇다보니 소의 코에 오래 꿰어 닳아진 코뚜레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일마저 생겼다. 현재에도 코뚜레가 가져다주는 복과 행운을 얻고자 식당이나 가게, 무역 등을 하는 이들이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이를 구하려 하곤 한다.   소를 우사에 가두어 키우는 방식이 보편적이게 되면서 코뚜레는 빠르게 사라져가는 추세다. 농사에 소 대신 기계를 사용하게 된 점 역시 코뚜레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코뚜레는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코뚜레가 신성시된 것도 결국은 그러한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번 채우면 벗어날 수 없다는 상징성에 조상들도 큰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농경사회의 조상들에게 소는 너무나도 귀한 노동력이었던 만큼 포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현재와 과거의 판단 기준은 다르다. 그리고 현재에도 기계가 들어설 수 없는 환경에는 여전히 코뚜레를 한 소가 논을 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코뚜레는 실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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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0
  • [작품 속 무속신앙] ➂ 웹툰 ‘신과 함께-이승편’, 잊혀진 가택신들
      웹툰 ‘신과 함께-이승편’의 주연으로 등장한 가택신들 ⓒ애니북스   [MS뉴스=이슬기 기자] 과거 조상들에게 집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장소로, 집을 지키는 가택신을 역시 고귀하게 모셔져왔다.   ‘신과 함께’ 2부인 ‘이승편’에서는 성주신, 조왕신, 측신, 철융신 등 가택신들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1부 이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저승 3차사와 사회의 압력에 대응해 삶의 가장 중요한 터전인 ‘집’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집은 주거의 장소인 동시에 가족의 시작이기도 하다. 특히 농경문화를 영위해온 우리 조상들에게는 단순히 자고, 쉬고, 먹고, 생활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 중요한 장소로서, 집에는 가족의 무병장수를 비롯해 재물의 풍요 등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가택신이다.   한국 전통 가옥의 거의 모든 공간에는 해당 공간을 관장하는 신이 존재한다. 이들 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이 대청마루에 거주하는 성주신이다. 가택신들 중 유일하게 천신급으로 분류되는 성주신은 집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가택신들을 통솔한다. 새 집을 짓거나 새로운 대주가 나타났을 때 탄생하여 그와 운명을 같이 한다.   조왕신과 측간신은 중위신으로서 인신급 신으로 분류된다. 조왕신은 부엌, 특히 아궁이와 불을 관장하는 신으로 재물의 신이기도 하다. 조왕신은 1년 간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다가 섣달 스무사나흘에 하늘로 올라가 천제에게 집주인의 잘잘못을 보고한다. 때문에 조왕신의 노여움을 사면 집안에 재앙이 깃드는데, 이것을 “동티난다”고도 한다.   측신은 변소·측간에 깃들어 있는 신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못된 첩이 측간으로 도망가다 죽어 측신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 측신은 신경질적이며, 갑자기 사람이 들어와서 놀라게 되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그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때문에 악신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웹툰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천륭신은 집안의 뒤꼍 장독대에 깃들어 가내의 평안과 자손의 안녕을 위해 모시는 신이자 집터를 수호하는 신이다.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모시는 가택신으로 기가 가장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한번 철륭신을 모시기 시작했다면 계속 모셔야하며, 이를 중단하게 되면 큰 화가 발생하게 된다.   이외에도 안방에는 조상신과 삼신, 사당에는 조상신, 뒤꼍에는 택지신과 재신, 대문에는 수문신, 우물에는 용왕신 등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집 밖에는 이들과 대조되는 다른 잡신들이 있어 우리 조상들은 잡신들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대문에 가시나무를 걸거나 금줄을 쳐서 출입을 제한하곤 했다.   실제로 죽은 이의 영혼을 데려가는 강림차사는 가택신들을 피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 지붕 상마루를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처럼 조상들이 모신 가택신은 강력하였고, 하여 가택신이 집 밖으로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절대로 밖에 내보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성스레 모셨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이 해체되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민간신앙을 일종의 미신으로 치부하게 되면서 이런 가택신앙도 이제는 많이 사라진 상태다. 잊혀져가고 있는 가택신들, 그들을 위해 한번쯤 인사를 올려보면 어떨까. 과거처럼 항아리에 백미를 담아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가만히 눈을 감고 손비빔하여 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례의 틀은 갖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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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9
  • [작품 속 무속신앙] ➁ 웹툰 ‘신과 함께-저승편’, 저승길 어벤저스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에서 활약한 저승 3차사의 과거 모습 ⓒ애니북스               [MS뉴스=이슬기 기자]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에 등장한 세 명의 차사는 사실상 저승길 ‘어벤저스’라 할 수 있다.   웹툰 ‘신과 함께’는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전통 신들과 인간의 운명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옴니버스식 3부로 구성된 작품으로, 특히 ‘저승편’의 인기가 높다. 주인공 김자홍이 저승에서 49일 동안 일곱 번의 재판을 받는 내용을 다룬 이 이야기는 김자홍의 조력자 진기한 변호사를 비롯해 매력적인 다수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중 팬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들 중 하나가 바로 저승 3차사이다.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강림도령, 해원맥, 이덕춘 세 명의 차사는 정장을 입은 채 등장해 지하철을 타며, 휴대폰을 사용한다. 보통의 산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들의 모습은 기존 저승사자에 대한 무섭고 부정적인 편견을 타파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권선징악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저승사자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 저승 3차사. 과연 이들은 기존 저승사자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기본적으로 강림도령의 경우는 거의 비슷하다. 이승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잡아가는 것이 이승차사 강림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와 항시 함께 다니는 일직차사 해원맥과 월직차사 이덕춘의 경우는 다소간의 재해석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저승차사는 이들 셋뿐만이 아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보면 저승차사의 구성이 셋인 경우가 많기는 하나, 딱히 고정되어있지도 않은 모양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저승 3사자를 시직차사, 일직차사, 월직차사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불교사찰에서는 저승차사를 둘이나 넷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나 서적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지라도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강림차사가 찾아간다는 점은 동일하다. 다만 강림은 정확히 말하자면 이승의 일을 주관하는 이승차사이다. 실제로 강림의 역할은 저승으로 가야 할 자의 영혼을 데리고 저승으로 가 저승차사에게 인계하는 것 까지다. 사실상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승차사란 사실 이승차사인 셈이다.   강림은 본디 이승의 사람이었으나 그 능력을 염라대왕에게 인정받아 차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가 살던 때는 옛날 동경국이다. 당시 버물왕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이들의 죽음을 예언했다. 버물왕이 아이들을 살릴 방도를 묻자 스님은 장사를 시키면 살 수도 있으나 광양 땅의 과양생이를 조심하라 일렀다.   버물왕은 세 아들에게 은물과 공단 등을 내려 장사를 시작하게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돌아오던 중 과양생이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이들의 물건을 욕심낸 과양생이와 과양각시가 이들의 식사에 독을 넣어서 살해하고 그 시신을 뒷천당 연화못에 버렸다. 그러자 며칠 뒤 그 자리에 삼색 연꽃이 피어 과양각시가 문간에 장식했다가 화로에 넣고 태워버린다.   이후 화로에 구슬이 있는 것을 발견한 과양각시는 구슬을 갖고 놀다가 삼켰고, 그 후 임신하게 되었다. 과양각시가 낳은 세 아들은 모두 머리가 총명하였다. 이에 셋 모두 과거급제하였으나 집에 돌아와 즉사해 버린다. 과양각시는 김치원님을 찾아가 아들이 죽은 이유를 밝혀 달라 요구하나, 원님에게는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원님은 강림도령에게 죄를 씌우고 염라대왕을 잡아오라고 하기에 이른다. 산 사람은 저승에 갈 수 없지만 강림도령은 부인의 현명한 지혜와 부인이 치성을 드린 가택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저승에 찾아가고, 염라대왕의 시험을 통과하여 당당히 과양각시의 세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게 된다.   이러한 강림도령이 마음에 든 염라대왕은 원님에게 강림도령을 나눠 갖자고 제안하여 원님은 육신을, 염라대왕은 영혼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강림도령이 강림차사가 되는 내용은 3부 ‘신화편’에서도 큰 각색 없이 다뤄진다. 그러나 정확하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는 일직차사와 월직차사의 이야기는 완전히 각색되었다.   일직차사는 하늘의 심부름을 하며, 월직지사는 땅의 일을 본다. 사람이 땅을 떠나 하늘로 가는 과정에서는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여 일직차사는 죽은 이가 빨리 하늘로 떠날 수 있도록 재촉하며, 월직차사는 죽은 이에게 저승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여준다. 이들이 강림차사와 함께하였으니 ‘신과 함께’의 3차사는 그야말로 저승길 ‘어벤져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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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9
  • [제주신화기행] ⑥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최종회)
    성산일출봉 인근마을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⑤편에서 이어집니다. 김녕에서 가까운 세화리와 하도리를 지났다. 이곳은 1930년대 잠녀(潛女)들의 투쟁을 그린 『껍질과 속살』, 『바람타는 섬』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해녀조합 간부들인 일본인들이 가혹하게 잠녀들을 수탈 했고, 이에 대한 저항을 다룬 소설들이다.  해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잠녀는 제주도 바닷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나는 세화리와 하도리를 뒤로 하고 차를 몰아 성산 일출봉 터진목에서 그들을 만났다. 까만 잠수복을 한 그들은 사진을 찍는 나를 웃으며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박으로 정성들여 만든 테왁을 썼는데 지금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것을 쓰고 있다. 조금 거리를 두고 해녀들이 물에 들었다.  1936년 21세 때부터 제주도를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泉端一)의 『제주도』에는 “바가 지에 끈이 달린 테왁과 조개 딸 때 쓰는 갈퀴를 들고 물안경 쓰고 자맥질을 한다.…… 똑바로 선 자세로 물속에 얼굴을 박고, 목표물을 가늠한 다음 발을 힘 있게 굽혀 가슴께로 끌어당기고 머리를 잽싸게 물속에 디밀어, 몸을 뻗고 발을 공중에 흔들어 침하속도를 높인 다음, 신체가 완전히 물속에 잠기면 발을 차듯이 움직이고, 손으로 물을 양옆으로 가르면서 가라앉는다. 한 번의 잠수를 끝낼 때는, 몸을 꺾은 자세로 다리를 아래로 내려서 힘차게 바닥을 차고 솟구친다. 수면에 뜨는 것과 동시에 ‘휘유’ 휘파 람을 부는 것이다.”라고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 휘파람을 제주에서는 ‘숨비소리(숨비 질소리)’라고 한다. 이 소리를 내고는 물질하는 친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해녀들은 1900년대 초부터 섬 밖으로 벌이를 나갔다고 한다. 일본, 육지 연안, 강원도, 심지어는 청진 까지 갔다가 기선을 타고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 청도(靑島)까지도 갔다고 한다.   현기영의 거룩한 생애를 학창시절에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소설은 해녀 ‘간난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녀는 일제시대 때 잠녀의 딸로 태어나 17살에 상꾼 잠녀가 되어 빼앗긴 밭을 되찾는다. 놀음에 미친 시아버지 때문에 무너진 집안을 그녀는 잠녀 일을 하여 일으 키고, 어린 신랑을 읍내 공립학교까지 보낸다. 그리고 일제 말엽에는 징용에 끌려가게 된 남편을 이끌고 육지로 물질 나가 금강산 근처에서 8.15 광복을 맞는다. 마침내 미군과 소련군이 지키는 38선을 넘어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4.3항쟁 시기에 한 많은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 졌다. 강인한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너무도 서러웠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 뒤로는 일출봉이 장엄하게 서 있었고, 파도는 거칠었다. 이곳은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신경숙의 소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표선민속촌과 성읍 민속마을에 들러 제주 도세기(돼지)도 보고, 올레며 정낭도 보며 옛 기억을 더듬었 다. 내 유년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갈옷을 파는 가게 앞에서도 한참을 서성거렸다. 푸른 감으로 물을 들이는 갈옷은 여름철 뙤약볕에서 김을 맬 때면 이만한 옷이 없었다. 땀도잘 흡수하고 바람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차를 달려 서귀포에서 이중섭이 거닐던 천지연폭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바로 추사 적거지로 향했다.  추사는 대정 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는 처음 화북진에 도착한 후 걸음을 옮겨 대정현의 송계순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섬 안의 섬이라 할 추사의 적거지는 가로 놓인 정낭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9년 간의 유배 생활은 추사로 하여금 한치의 틈도 없는 고독과 자연에의 몰입, 예술혼을 불태우게 했다. 그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사랑하는 아내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수선화를 사랑했다고 한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시름 가시고/ 너와의 선연(仙緣)은 다할 수 없어/ 호미 끝에 버려진 예사론 너를/ 오롯한 창가에 놓고 기른다.” 나는 어디 수선화를 심어놓지나 않았는지 주변을 서성거렸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섬이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너머에 숨쉬고 있는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대별왕과 소별왕, 설문대할망을 이야기하고, 삼별초의 항쟁과 4.3항쟁, 해녀들과 유배자들의 쓰린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있기를 소망한다.   * 참고문헌  고시홍,「제주섬의 소설적 변용」, 『바다와 섬의 문학과 인간』, 제주국제협의회 편, 1999.김영돈, 『제주민의 삶과 문화』, 제주문화, 1993.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1994.박종성, 「<천지왕본풀이>의 신화적 의미」, 『구비문학연구』6집, 한국구비문학회, 1998.시바 료타로, 『탐라 기행』, 학고재, 1998.오대혁, 「김통정 관련 서사물에 투영된 역사인식」, 『설화와 역사』, 집문당, 2000.이영권, 『제주역사기행』, 한겨레신문사, 2004.장주근, 『풀어쓴 한국의 신화』, 집문당, 1998.진성기, 『남국의 민담』, 형설출판사, 1976.진성기,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 민속원, 1991.현용준, 『제주도 전설』, 서문문고, 1976.현용준 현승환 역주, 『제주도 무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6.    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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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4
  • ‘굿’ 대가로 12억 챙긴 무속인 무죄, 왜?
    ‘굿’을 대가로 12억 원을 챙긴 무속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영화 ‘그놈이다’ 스틸    [엠에스 뉴스=고문선 기자] ‘굿’을 대가로 12억 원을 챙긴 무속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민철기 부장판사)는 3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방 모 씨(64)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방 씨와 ‘신내림을 받았다’고 주장한 A씨를,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종교시설을 운영하며 피해자 3명에게 모두 12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했다.   방 씨는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온 피해자 B씨에게 “남편이 내연녀와 바람이 난 일, 아들이 오랜 기간 질병을 앓는 것은 몹쓸 여자귀신과 조상귀신이 몸에 붙었기 때문”이라며 “조상을 하늘로 보내는 의식을 진행해야 흉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방 씨는 500만~3000만원까지 등급을 두고, 가급적 높은 가격대의 의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방 씨는 의식을 하지 않으면 B씨 가족에 흉사가 일어날 것처럼 불안감을 갖도록 해 2010~2016년 13차례 모두 7억 8700만원을 의식 비용으로 챙겼다.   방 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피해자 2명에게서 각각 3억 8000만원, 5000만원을 의식 비용 명목으로 받아 챙겼다.   재판부는 “무속신앙에 기대 굿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 역시 어떤 현실적인 결과의 달성을 바라기보다,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목적으로 하는 특징이 있다”며 “굿과 관련해 금전을 교부받은 행위가 범죄인지 여부는 무속신앙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 씨가 다소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교리를 설파하면서 피해자들로부터 통상적인 수준에 비해 과다한 의식 비용을 지급받은 점 등에서 유죄 의심이 간다”며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전통적인 관습 또는 종교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피해자들을 기망해 의식 비용을 편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이 이유를 설명했다.  
    • 전통신앙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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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들이 ‘쇠코뚜레’를 대문에 걸어둔 이유
      코뚜레를 한 소의 모습 ⓒ영화 ‘워낭소리’ 스틸컷   [MS뉴스=이슬기 기자] 소의 코뚜레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   쇠코뚜레란 소의 코청을 뚫어 끼우는 둥근 나무 테를 말한다. 힘이 강하고 고집이 센 소를 쉽게 제압하여 다루기 위한 도구로, 이를 잡아당기면 소는 강한 통증을 느끼기 때문에 농부가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농가에서는 소에게 코뚜레를 채우는 날로 대개 양기가 세고 잡귀의 범접이 없는 단옷날을 많이 선택한다. 나무송곳으로 코 사이를 뚫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로 인해 생겨난 상처는 일주일가량 지나면 아물게 된다.   코뚜레가 작아지거나 금이 가면 새것으로 갈아 채운다. 그러나 사용하던 코뚜레는 버리지 않는다. 크고 힘이 센 소를 속박시킨 코뚜레에는 그 세월만큼이나 강한 주력이 담겨있다고 예로부터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사용된 코뚜레는 대문이나 집 안에 걸어 악귀의 침범을 막거나, 집안에 들어온 복이나 부를 붙잡아두는 용도로 이용되어왔다. 복조리와 비슷한 의미로 정초에 대문이나 방문에 걸기도 했다. 소의 건강을 빌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외양간 처마에 꽂아 두는 일도 있었다.   이렇다보니 소의 코에 오래 꿰어 닳아진 코뚜레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일마저 생겼다. 현재에도 코뚜레가 가져다주는 복과 행운을 얻고자 식당이나 가게, 무역 등을 하는 이들이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이를 구하려 하곤 한다.   소를 우사에 가두어 키우는 방식이 보편적이게 되면서 코뚜레는 빠르게 사라져가는 추세다. 농사에 소 대신 기계를 사용하게 된 점 역시 코뚜레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코뚜레는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코뚜레가 신성시된 것도 결국은 그러한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번 채우면 벗어날 수 없다는 상징성에 조상들도 큰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농경사회의 조상들에게 소는 너무나도 귀한 노동력이었던 만큼 포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현재와 과거의 판단 기준은 다르다. 그리고 현재에도 기계가 들어설 수 없는 환경에는 여전히 코뚜레를 한 소가 논을 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코뚜레는 실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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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0
  • [작품 속 무속신앙] ➂ 웹툰 ‘신과 함께-이승편’, 잊혀진 가택신들
      웹툰 ‘신과 함께-이승편’의 주연으로 등장한 가택신들 ⓒ애니북스   [MS뉴스=이슬기 기자] 과거 조상들에게 집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장소로, 집을 지키는 가택신을 역시 고귀하게 모셔져왔다.   ‘신과 함께’ 2부인 ‘이승편’에서는 성주신, 조왕신, 측신, 철융신 등 가택신들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1부 이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저승 3차사와 사회의 압력에 대응해 삶의 가장 중요한 터전인 ‘집’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집은 주거의 장소인 동시에 가족의 시작이기도 하다. 특히 농경문화를 영위해온 우리 조상들에게는 단순히 자고, 쉬고, 먹고, 생활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 중요한 장소로서, 집에는 가족의 무병장수를 비롯해 재물의 풍요 등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가택신이다.   한국 전통 가옥의 거의 모든 공간에는 해당 공간을 관장하는 신이 존재한다. 이들 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이 대청마루에 거주하는 성주신이다. 가택신들 중 유일하게 천신급으로 분류되는 성주신은 집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가택신들을 통솔한다. 새 집을 짓거나 새로운 대주가 나타났을 때 탄생하여 그와 운명을 같이 한다.   조왕신과 측간신은 중위신으로서 인신급 신으로 분류된다. 조왕신은 부엌, 특히 아궁이와 불을 관장하는 신으로 재물의 신이기도 하다. 조왕신은 1년 간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다가 섣달 스무사나흘에 하늘로 올라가 천제에게 집주인의 잘잘못을 보고한다. 때문에 조왕신의 노여움을 사면 집안에 재앙이 깃드는데, 이것을 “동티난다”고도 한다.   측신은 변소·측간에 깃들어 있는 신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못된 첩이 측간으로 도망가다 죽어 측신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 측신은 신경질적이며, 갑자기 사람이 들어와서 놀라게 되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그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때문에 악신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웹툰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천륭신은 집안의 뒤꼍 장독대에 깃들어 가내의 평안과 자손의 안녕을 위해 모시는 신이자 집터를 수호하는 신이다.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모시는 가택신으로 기가 가장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한번 철륭신을 모시기 시작했다면 계속 모셔야하며, 이를 중단하게 되면 큰 화가 발생하게 된다.   이외에도 안방에는 조상신과 삼신, 사당에는 조상신, 뒤꼍에는 택지신과 재신, 대문에는 수문신, 우물에는 용왕신 등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집 밖에는 이들과 대조되는 다른 잡신들이 있어 우리 조상들은 잡신들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대문에 가시나무를 걸거나 금줄을 쳐서 출입을 제한하곤 했다.   실제로 죽은 이의 영혼을 데려가는 강림차사는 가택신들을 피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 지붕 상마루를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처럼 조상들이 모신 가택신은 강력하였고, 하여 가택신이 집 밖으로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절대로 밖에 내보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성스레 모셨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이 해체되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민간신앙을 일종의 미신으로 치부하게 되면서 이런 가택신앙도 이제는 많이 사라진 상태다. 잊혀져가고 있는 가택신들, 그들을 위해 한번쯤 인사를 올려보면 어떨까. 과거처럼 항아리에 백미를 담아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가만히 눈을 감고 손비빔하여 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례의 틀은 갖출 수 있다.  
    • 전통신앙
    2019-11-09
  • [작품 속 무속신앙] ➁ 웹툰 ‘신과 함께-저승편’, 저승길 어벤저스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에서 활약한 저승 3차사의 과거 모습 ⓒ애니북스               [MS뉴스=이슬기 기자]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에 등장한 세 명의 차사는 사실상 저승길 ‘어벤저스’라 할 수 있다.   웹툰 ‘신과 함께’는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전통 신들과 인간의 운명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옴니버스식 3부로 구성된 작품으로, 특히 ‘저승편’의 인기가 높다. 주인공 김자홍이 저승에서 49일 동안 일곱 번의 재판을 받는 내용을 다룬 이 이야기는 김자홍의 조력자 진기한 변호사를 비롯해 매력적인 다수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중 팬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들 중 하나가 바로 저승 3차사이다.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강림도령, 해원맥, 이덕춘 세 명의 차사는 정장을 입은 채 등장해 지하철을 타며, 휴대폰을 사용한다. 보통의 산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들의 모습은 기존 저승사자에 대한 무섭고 부정적인 편견을 타파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권선징악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저승사자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 저승 3차사. 과연 이들은 기존 저승사자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기본적으로 강림도령의 경우는 거의 비슷하다. 이승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잡아가는 것이 이승차사 강림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와 항시 함께 다니는 일직차사 해원맥과 월직차사 이덕춘의 경우는 다소간의 재해석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저승차사는 이들 셋뿐만이 아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보면 저승차사의 구성이 셋인 경우가 많기는 하나, 딱히 고정되어있지도 않은 모양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저승 3사자를 시직차사, 일직차사, 월직차사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불교사찰에서는 저승차사를 둘이나 넷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나 서적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지라도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강림차사가 찾아간다는 점은 동일하다. 다만 강림은 정확히 말하자면 이승의 일을 주관하는 이승차사이다. 실제로 강림의 역할은 저승으로 가야 할 자의 영혼을 데리고 저승으로 가 저승차사에게 인계하는 것 까지다. 사실상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승차사란 사실 이승차사인 셈이다.   강림은 본디 이승의 사람이었으나 그 능력을 염라대왕에게 인정받아 차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가 살던 때는 옛날 동경국이다. 당시 버물왕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이들의 죽음을 예언했다. 버물왕이 아이들을 살릴 방도를 묻자 스님은 장사를 시키면 살 수도 있으나 광양 땅의 과양생이를 조심하라 일렀다.   버물왕은 세 아들에게 은물과 공단 등을 내려 장사를 시작하게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돌아오던 중 과양생이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이들의 물건을 욕심낸 과양생이와 과양각시가 이들의 식사에 독을 넣어서 살해하고 그 시신을 뒷천당 연화못에 버렸다. 그러자 며칠 뒤 그 자리에 삼색 연꽃이 피어 과양각시가 문간에 장식했다가 화로에 넣고 태워버린다.   이후 화로에 구슬이 있는 것을 발견한 과양각시는 구슬을 갖고 놀다가 삼켰고, 그 후 임신하게 되었다. 과양각시가 낳은 세 아들은 모두 머리가 총명하였다. 이에 셋 모두 과거급제하였으나 집에 돌아와 즉사해 버린다. 과양각시는 김치원님을 찾아가 아들이 죽은 이유를 밝혀 달라 요구하나, 원님에게는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원님은 강림도령에게 죄를 씌우고 염라대왕을 잡아오라고 하기에 이른다. 산 사람은 저승에 갈 수 없지만 강림도령은 부인의 현명한 지혜와 부인이 치성을 드린 가택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저승에 찾아가고, 염라대왕의 시험을 통과하여 당당히 과양각시의 세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게 된다.   이러한 강림도령이 마음에 든 염라대왕은 원님에게 강림도령을 나눠 갖자고 제안하여 원님은 육신을, 염라대왕은 영혼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강림도령이 강림차사가 되는 내용은 3부 ‘신화편’에서도 큰 각색 없이 다뤄진다. 그러나 정확하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는 일직차사와 월직차사의 이야기는 완전히 각색되었다.   일직차사는 하늘의 심부름을 하며, 월직지사는 땅의 일을 본다. 사람이 땅을 떠나 하늘로 가는 과정에서는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여 일직차사는 죽은 이가 빨리 하늘로 떠날 수 있도록 재촉하며, 월직차사는 죽은 이에게 저승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여준다. 이들이 강림차사와 함께하였으니 ‘신과 함께’의 3차사는 그야말로 저승길 ‘어벤져스’인 셈이다.  
    • 전통신앙
    2019-11-09
  • [제주신화기행] ⑥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최종회)
    성산일출봉 인근마을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⑤편에서 이어집니다. 김녕에서 가까운 세화리와 하도리를 지났다. 이곳은 1930년대 잠녀(潛女)들의 투쟁을 그린 『껍질과 속살』, 『바람타는 섬』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해녀조합 간부들인 일본인들이 가혹하게 잠녀들을 수탈 했고, 이에 대한 저항을 다룬 소설들이다.  해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잠녀는 제주도 바닷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나는 세화리와 하도리를 뒤로 하고 차를 몰아 성산 일출봉 터진목에서 그들을 만났다. 까만 잠수복을 한 그들은 사진을 찍는 나를 웃으며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박으로 정성들여 만든 테왁을 썼는데 지금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것을 쓰고 있다. 조금 거리를 두고 해녀들이 물에 들었다.  1936년 21세 때부터 제주도를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泉端一)의 『제주도』에는 “바가 지에 끈이 달린 테왁과 조개 딸 때 쓰는 갈퀴를 들고 물안경 쓰고 자맥질을 한다.…… 똑바로 선 자세로 물속에 얼굴을 박고, 목표물을 가늠한 다음 발을 힘 있게 굽혀 가슴께로 끌어당기고 머리를 잽싸게 물속에 디밀어, 몸을 뻗고 발을 공중에 흔들어 침하속도를 높인 다음, 신체가 완전히 물속에 잠기면 발을 차듯이 움직이고, 손으로 물을 양옆으로 가르면서 가라앉는다. 한 번의 잠수를 끝낼 때는, 몸을 꺾은 자세로 다리를 아래로 내려서 힘차게 바닥을 차고 솟구친다. 수면에 뜨는 것과 동시에 ‘휘유’ 휘파 람을 부는 것이다.”라고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 휘파람을 제주에서는 ‘숨비소리(숨비 질소리)’라고 한다. 이 소리를 내고는 물질하는 친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해녀들은 1900년대 초부터 섬 밖으로 벌이를 나갔다고 한다. 일본, 육지 연안, 강원도, 심지어는 청진 까지 갔다가 기선을 타고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 청도(靑島)까지도 갔다고 한다.   현기영의 거룩한 생애를 학창시절에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소설은 해녀 ‘간난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녀는 일제시대 때 잠녀의 딸로 태어나 17살에 상꾼 잠녀가 되어 빼앗긴 밭을 되찾는다. 놀음에 미친 시아버지 때문에 무너진 집안을 그녀는 잠녀 일을 하여 일으 키고, 어린 신랑을 읍내 공립학교까지 보낸다. 그리고 일제 말엽에는 징용에 끌려가게 된 남편을 이끌고 육지로 물질 나가 금강산 근처에서 8.15 광복을 맞는다. 마침내 미군과 소련군이 지키는 38선을 넘어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4.3항쟁 시기에 한 많은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 졌다. 강인한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너무도 서러웠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 뒤로는 일출봉이 장엄하게 서 있었고, 파도는 거칠었다. 이곳은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신경숙의 소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표선민속촌과 성읍 민속마을에 들러 제주 도세기(돼지)도 보고, 올레며 정낭도 보며 옛 기억을 더듬었 다. 내 유년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갈옷을 파는 가게 앞에서도 한참을 서성거렸다. 푸른 감으로 물을 들이는 갈옷은 여름철 뙤약볕에서 김을 맬 때면 이만한 옷이 없었다. 땀도잘 흡수하고 바람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차를 달려 서귀포에서 이중섭이 거닐던 천지연폭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바로 추사 적거지로 향했다.  추사는 대정 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는 처음 화북진에 도착한 후 걸음을 옮겨 대정현의 송계순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섬 안의 섬이라 할 추사의 적거지는 가로 놓인 정낭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9년 간의 유배 생활은 추사로 하여금 한치의 틈도 없는 고독과 자연에의 몰입, 예술혼을 불태우게 했다. 그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사랑하는 아내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수선화를 사랑했다고 한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시름 가시고/ 너와의 선연(仙緣)은 다할 수 없어/ 호미 끝에 버려진 예사론 너를/ 오롯한 창가에 놓고 기른다.” 나는 어디 수선화를 심어놓지나 않았는지 주변을 서성거렸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섬이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너머에 숨쉬고 있는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대별왕과 소별왕, 설문대할망을 이야기하고, 삼별초의 항쟁과 4.3항쟁, 해녀들과 유배자들의 쓰린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있기를 소망한다.   * 참고문헌  고시홍,「제주섬의 소설적 변용」, 『바다와 섬의 문학과 인간』, 제주국제협의회 편, 1999.김영돈, 『제주민의 삶과 문화』, 제주문화, 1993.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1994.박종성, 「<천지왕본풀이>의 신화적 의미」, 『구비문학연구』6집, 한국구비문학회, 1998.시바 료타로, 『탐라 기행』, 학고재, 1998.오대혁, 「김통정 관련 서사물에 투영된 역사인식」, 『설화와 역사』, 집문당, 2000.이영권, 『제주역사기행』, 한겨레신문사, 2004.장주근, 『풀어쓴 한국의 신화』, 집문당, 1998.진성기, 『남국의 민담』, 형설출판사, 1976.진성기,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 민속원, 1991.현용준, 『제주도 전설』, 서문문고, 1976.현용준 현승환 역주, 『제주도 무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6.    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 전통신앙
    2019-11-04
  • ‘굿’ 대가로 12억 챙긴 무속인 무죄, 왜?
    ‘굿’을 대가로 12억 원을 챙긴 무속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영화 ‘그놈이다’ 스틸    [엠에스 뉴스=고문선 기자] ‘굿’을 대가로 12억 원을 챙긴 무속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민철기 부장판사)는 3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방 모 씨(64)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방 씨와 ‘신내림을 받았다’고 주장한 A씨를,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종교시설을 운영하며 피해자 3명에게 모두 12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했다.   방 씨는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온 피해자 B씨에게 “남편이 내연녀와 바람이 난 일, 아들이 오랜 기간 질병을 앓는 것은 몹쓸 여자귀신과 조상귀신이 몸에 붙었기 때문”이라며 “조상을 하늘로 보내는 의식을 진행해야 흉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방 씨는 500만~3000만원까지 등급을 두고, 가급적 높은 가격대의 의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방 씨는 의식을 하지 않으면 B씨 가족에 흉사가 일어날 것처럼 불안감을 갖도록 해 2010~2016년 13차례 모두 7억 8700만원을 의식 비용으로 챙겼다.   방 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피해자 2명에게서 각각 3억 8000만원, 5000만원을 의식 비용 명목으로 받아 챙겼다.   재판부는 “무속신앙에 기대 굿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 역시 어떤 현실적인 결과의 달성을 바라기보다,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목적으로 하는 특징이 있다”며 “굿과 관련해 금전을 교부받은 행위가 범죄인지 여부는 무속신앙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 씨가 다소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교리를 설파하면서 피해자들로부터 통상적인 수준에 비해 과다한 의식 비용을 지급받은 점 등에서 유죄 의심이 간다”며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전통적인 관습 또는 종교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피해자들을 기망해 의식 비용을 편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이 이유를 설명했다.  
    • 전통신앙
    2019-10-31
  • [제주신화기행] ⑤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용두암을 옆에서 보면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으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얇은 판을 길게 세워놓은 모양이다. ⓒ비짓제주     나는 서둘러 용두암과 용연을 둘러보았다. 저녁 무렵에는 반짝이는 놀이시설과 호텔 그리고 높다랗게 쌓아올린 탑동매립지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어둠에도 잠들지 못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밤이 되어도/잠들지 못하는 제주바다야,/ 숱한 배반으로/ 쫓기고 떠밀려 온 세월을/ 이 밤도 울부짖는 바다야”(양중해 - 잠들지 못하는 바다)  제주의 어른들은 무슨 일이든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뺄라진추륵 허지 말라(잘난 척 하지 마라).” “곤 밥(흰 밥) 먹은 소리 허지 말라.”라는 말을 흔히 했다. 왜 그랬을까? 제주 민중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소리 한번 쳐서 죽고, 나서서 죽고, 혼자 뛰어가다 죽고, 사람들에게 싸우자 하다 죽는 이들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제주민들의 외지인들에 대한 경계의 눈길도 어쩌면 죽음의 역사를 통해 내면화된 집단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아침 일찍 애월읍 항파두리를 찾았다. 삼별초가 여.몽연합군과 맞서 싸우던 곳이다. 강화도, 진도를 거쳐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제주에 들어온 김통정은 귀일촌에 토성과 석축으로 내외성을 쌓고, 애월포에 목성을, 하귀포에 군항(軍港)을 세웠다. 성의 규모는 외성인 토성의 둘레가 6Km 가량 되었고, 성 안에 백성들을 살게 했다. 여.몽연합군의 맹렬한 화공(火工)을 맞아 항전하다 함덕포가 무너지고, 항파두리성이 함락되자 김통정은 남은 병력만을 이끌고 한라산에서 싸우다 자결하고 만다.  김통정의 죽음은 고려에서 항몽세력의 뿌리가 완전히 뽑힌 것을 뜻한다. 고려 정부의 수탈과 지방관의 가렴주구에 시달려왔던 제주 민중은 김통정 세력에 협조하면서 반정부, 반외세의 기치를 함께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패배한 영웅으로 만들었고, 몽고의 마목장이 들어서며 제주 민중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김통정은 애월면 고내리의 고내본향당본풀이를 비롯한 6편의 무가 속에서 탐라의 생산물에 욕심을 부리다 세 장수에게 죽은 것으로 그려졌다. 항파두리 토성 일대에는 살맞은돌, 돌쩌귀, 장수물 등의 전설로 당시의 역사가 남아 있다.  다시 차를 돌려 북제주군 구좌읍 쪽으로 향했다. 김녕사굴과 만장굴을 찾았다. 제주에는 이외에도 협재굴, 쌍용굴, 소천굴, 황금굴, 빌레못굴 등 세계적인 용암동굴이 많이 있다. 만장굴은 13Km나 되고 석주, 종유석 등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고고학상 가치가 높은 굴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로 알려진 만장굴은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주 깊다는 뜻으로 만쟁이거머리굴로 불려오다가 1958년 당시 김녕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종휴 씨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비짓제주   김녕사굴은 S자형의 동굴로 세 개 부분으로 나뉘는데 뱀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이 굴 속에 살던 커다란 뱀은 매년 큰굿을 하고 처녀를 희생으로 바치지 않으면 곡식밭을 휘저어 흉년이 들게 했다.   이 즈음 서연(徐憐)이라는 판관(判官)이 부임하여 군졸과 함께 그 뱀을 창검으로 찔러 죽였다. 서판관은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다 뱀신의 복수로 파선당하여 고기밥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뱀이 나왔겠는가? 조선시대 관리들이 유교 이념을 앞세워 제주의 신당을 파괴하려는 데 대한 민중의 저항 의식이 설화화된 것이리라.  이곳 김녕굴당에는 뱀신인 궤네깃또 신이 모셔진다. 바다를 건너 들어온 백주또 할망이 사냥을 하며 살아가던 토착신인 소천국과 만나 일곱 자식을 낳아 길렀다. 사냥을 해서는 먹고 살 길이 없어 농사를 짓는데, 소천국은 밭 갈던 소까지 잡아먹고 결국 헤어지게 된다. 여덟째 자식을 낳아 기르던 백주또는 오백 장군의 딸을 첩으로 두고 살던 소천국을 찾아갔다.   그런데 소천국은 고기를 굽고 있었고, 그 모습에 화가 난 백주또는 아들 궤네깃또를 무쇠상자에 넣고 동해 바다로 띄워버린다. 궤네깃또는 용왕국의 막내딸과 결혼하고, 강남천자국에서 공을 세운 후 제주섬으로 들어온다. 그 모습에 무서워 도망가던 백주또와 소천국은 죽게 되고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당신이 된다. 형들도 모두 죽는다. 궤네깃또는 궤네기에 좌정해 사람들이 일년에 한 번씩 통째로 돼지를 바치면 마을을 튼튼히 지켜주는 신이 되었다. 뱀신에게 돼지를 바치는 본풀이의 내용이 앞서 본 설화를 낳게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뱀신을 모시는 곳으로는 송당본향당, 대정광정당, 내도본향당, 표선 토산당, 차귀당 등이 있다. 그리고 일반신 본풀이인 칠성본풀이는 집안의 풍요를 가져오는 뱀신인 칠성을 노래한다. 지금은 많이 흐려졌지만 이렇듯 뱀 신앙은 제주도민의 생활 속에 깊숙이 살아 있었다. 제주도처럼 뱀 자체를 신앙화하면서 체계화한 곳은 찾기 힘들다고 한다. 현길언의 「김녕사굴 본풀이」는 김녕사굴에 얽힌 위 설화와 칠성 본풀이를 혼합하여 흥미롭게 쓴 소설이다. ⑥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 전통신앙
    2019-10-31
  • [제주신화기행] ➃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삼성혈은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 시조가 태어난 곳이다. ⓒ비짓제주     제주시에서는 삼성혈을 맨 먼저 찾았다. 탐라국은 신라와 백제에 입조하여 국호와 벼슬을 받고 고려 태조 21년(938)에 고려에 속하게 되었는데 삼성혈은 그러한 역사 시대에 편입해 들어간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 시조가 태어난 곳이다.   거목들이 들어찬 뜰을 걸어 들어가면 3개의 구덩이가 나온다. 이 구덩이에서 사람이 솟아나왔다는 것은 물론 허구이다. 아마도 탐라 건국신화이자 3성 시조의 신화를 노래하던 당굿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중종 21년(1526)에 이수동 목사가 석단을 쌓고 혈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 것이 유교식 조상 제의로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매년 유교식으로 대제(大祭)가 봉헌 된다. 『성주고씨전』(1416)과 『고려사』(1454)에는 삼성혈신화가 전해진다.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인은 탄생했다. 그들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내려 왔다. 그 함을 열었더니 돌함과 붉은 띠를 두르고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가 있었다. 돌함에는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 망아지, 오곡의 씨가 있었다. 사자는 벽랑국(碧浪國)에서 신의 아들 3인에게 배필이 필요할 듯하여 세 공주를 모시고 왔노라 했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활로 거처할 땅을 점쳤다.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소와 말을 길러 살림이 풍부해졌다.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는 세 공주를 맞이한 연혼포(延婚浦. 속칭 황루알)와 결혼식을 올린 혼인지(婚姻池)가 있다.  삼성혈 가까이에 있는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중앙로로 걸어 내려갔다. 세종 30년(1448)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세워진 관덕정을 찾아가니 제주목 관아가 그 옆에 복원되고 있었다. 탐라국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정치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곳을 1991년부터 발굴하여 옛 모습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관덕정 광장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니 관아 복원만으로 채울 수 없는 곳임을 생각하게 했다.   세종 30년(1448)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세워진 관덕정은 탐라국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정치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비짓제주   관덕정 광장은 천주교도들의 횡포와 봉세관의 조세 수탈에 항거해 일어난 ‘이재수의 난’의 무대였 다. 수백 명의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는 구한말에 일어난 방성칠 난과 함께 이재수의 난을 그렸다. 관권의 핍박과 외세를 등에 업은 천주교도들의 횡포에 대한 제주민의 항쟁을 다루었다.  또한 관덕정 광장은 일제 말엽에는 5일장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4.3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3.1 시위사건이나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주검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곳도 이곳이었다.   소설가 현기영은 관덕정 광장에서 바라보았던 시국연설회, 군인과 토벌대, 그리고 목 잘린 머리통들의 기억을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붉은 동백꽃이 꽃으로 보이지 않고 눈 위에 뿌려진 선혈처럼 끔찍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역사의 소용돌이는 역사책에 고스란히 자리를 잡을 수도 있지만 그 시대의 생생한 생활사는 그 시대를 산 자의 기록에 의해서만 복원이 가능하다. 아니 4.3이 ‘사태’에서 ‘항쟁’으로 신원이 되기까지는 폭압적인 독재정권에 맞서 고문을 견디며 끝끝내 펜을 놓지 않았던 문인들의 힘이 컸다.  풍문으로만 떠돌며 쉬쉬 거리던 4·3을 최초로 공론화했던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8)은 작가를 보안사로 끌고 가 모진 고문과 책의 발매 금지를 당하게 했다.   어느 대담에서 그는 “원래 내 생각은 세 편만 쓰고 그만두려고 했습니다.…그런데 당국에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더란 말입니다. 뭐, 조사도 당하고 끌려가기도 했죠.…그러니 나는 계속 쓸 수밖에 없었고 또 소설만 쓴 게 아니라, <4.3 연구회>라는 조직도 만들었죠.…정권과 일대일로 붙을 수도 있는 것이 문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작 가세계』36, 1998.)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얼마나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되는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의 ‘너분숭이’라는 밭은 군경토벌대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320명의 영혼이 숨 쉬는 곳이 다. 한번 찾아볼 일이다.)  현기영, 오성찬, 현길언, 고시홍, 한림화, 김석범 등 4.3항쟁 시기를 살았던 소설가들의 뇌리에 각인된 피의 살육은 그들의 고통스런 글쓰기를 이끌며 참된 세상에 대한 갈망을 사람들에게 요구한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 <아버지>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잃어버린 시절> <아스팔트> <길>, 오성찬의 <연 날리기> <사포에서> <겨울산행>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 <크는 산>, 현길언의 <우리들의 조부님> <귀향> <먼 훗날> <지나는 바람에게> <귀향> <未明> <한라산>,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 고시 홍의 <도마칼> <해야 솟아라> <계명의 도시> <저승문> <유령들의 친목회> <자서전 고쳐쓰기>, 재일 작가 김석범의 <火山島>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이 ‘4.3문학’을 형성한다. ⑤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 전통신앙
    2019-10-29
  • 정호근, 후배 이서진 성공 미리 알아본 남다른 무속인의 ‘촉’
    라디오에 출연해 솔직한 입담을 뽐낸 배우 정호근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 캡처  [MS뉴스=이슬기 기자] 배우이자 무속인 정호근이 후배인 이서진이 신인 시절부터 대성할 것을 미리 알아봤다고 밝혀 화제다.    10월28일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는 배우이자 무속인 정호근이 ‘직업의 섬세한 세계’ 코너 게스트로 출연해 남다른 입담을 뽐냈다. 이 날 정호근은 왜 갑자기 무속인이 되었느냐는 박명수의 질문에 “사람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길을 가게 되기도 한다”고 답했다.   MBC 공채 17기 출신인 정호근은 1983년 데뷔 후 ‘여명의 눈동자’, ‘선덕여왕’ 등 수많은 작품에서 활약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그러나 2014년 큰 병을 앓게 된 것을 계기로 신내림을 받은 뒤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정호근은 자신의 할머니가 대전에서 이름을 떨치던 무당으로, 누나들도 신병을 앓은 적이 있다며 “배우로서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무당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 변화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혀 화제가 됐다.   이 날 방송에서 정호근은 신내림을 받기 전에도 유난히 촉이 좋았던 일화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좀 유별나다. ‘너네 집에 누구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같은 아는 소리를 많이 한다”는 것. 당시 정호영의 말을 들은 이들은 코웃음을 쳤지만 곧 그의 말이 맞았다며 다시 찾아왔다.   이어 정호영은 후배들도 미래도 많이 봐줬다며 “이서진도 신인 때 찾아왔다. 굉장히 주눅 든 상태였다. ‘너는 잘 되겠다. 꼭대기에 올라앉겠다’고 했더니 지금도 고마워하더라. 헬스클럽에서 만났는데 ‘선배님 환영합니다’라고 했다”고 훈훈한 선후배간의 일화도 털어놨다.   한편 정호영은 “한 달에 얼마 버냐”는 박명수의 직설적인 질문에 “이런 질문 안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당황하다가 하루에 5명 정도의 손님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점 보러 올 때 미니멈 얼마부터냐”는 질문에는 “5만원 정도는 올려놔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며 박명수를 폭소케 했다.  
    • 전통신앙
    2019-10-28
  • [제주 신화기행] ➂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➁편에서 이어집니다. 제주 섬은 순수한 토착민들만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다. 천지왕본풀이나 뒤에 보게 될 삼성혈신화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섬은 토착민들이 유입된 외지인들과 더불어 만들어간 공간이다. 제주에 들어온 시기를 보면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조선 중기 당쟁 시기로 중심부에서 쫓겨 들어온 사람들이다. 당신 본풀이들이 말하는 신의 내력은 유입과 이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상의 창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설문대할망(선문데할망, 설명두할망, 세명뒤할망이라고도 전한다.)이라는 거대한 여신의 제주 섬 창조로 이어진다. 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발이 바다에 닿아 물장난을 할 정도로 거대했다. 할망은 밋밋했던 섬을 아름답게 꾸미기 시작했다. 치마폭에 흙을 날라 한라산을 만들고, 구멍 난 치마폭의 흙으로 초원 위에 오름들을 만들었다. 성산 일출봉과 식산봉에 양 발을 디디고 앉아 시원스레 눈 오줌으로 소섬[牛島]을 만들었다. 그런데 섬에 갇혀 살던 사람들이 육지로 다리를 놓아 달라는 부탁에 할망은 속옷 한 벌을 요구했다. 거친 밥을 먹으며 살던 섬사람들은 100필의 명주에서 1필이 모자라는 바람에 속옷을 완성하지 못했고, 다리를 놓아가다 그만 둔 흔적이 조천 앞바다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렇게 제주 섬을 창조한 할망은 바다고기를 잘 잡는 할으방을 만나 윤 3월 16일 500형제 자식을 낳고 고기를 함께 잡으며 살았다. 그런데 식구가 많은데다 흉년이 들어 할망은 자식들에게 죽이라도 끓일 양식을 구해 오라고 타일러 보냈다. 죽을 끓이느라 어마어마하게 큰 가마솥에 불을 때다 할망은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오백 형제는 여느 때보다 맛있게 죽을 먹었고, 막내가 솥을 휘젓다 사람의 뼈를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 고기를 먹은 걸 안 이들은 통탄을 하다 모두 바위로 굳어버렸고, 한라산 영실(靈室)의 수많은 기암괴석이 바로 그것이라 한다. 가을 단풍을 만끽하려면 한라산 서측의 이곳 영실을 찾으면 좋다. 거기에서 오백장군(오백나한) 바위를 따라 흐르는 바람을 느껴보기 바란다.  이처럼 설문대할망 설화에는 섬사람들의 육지를 향한 지향과 좌절감, 그리고 척박한 땅과 바다를 상대로 싸우며 견뎌야 했던 지독한 가난이 슬프게 아로새겨져 있다. 고립된 섬에 살던 제주인들은 외지인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면 깊숙이 육지를 향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기팔은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아름다운 것은/ 내가 건널 수 없는 수평선/ 끝끝내 닿지못할/ 그리움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먼 바다 푸른 섬 하나)라고 노래했다. 그래서 문충성은 “제주섬은 가난과 한숨에 흔들리고 날마다/ 흔들리는 제주섬 지키는 설문대할망은/ 제주섬 사람들 수천 년 살아온/ 전설이 되고 바람이 되고 영욕이 되고/ 이어도를 꿈꾸는 꿈이 되고 노래가 되고”(설문대할망)라며 섬사람들의 슬픔과 꿈이 스며든 존재로 설문대할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다. 신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신들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본풀 이가 굿의 현장에 있다. 천지왕본풀이를 비롯한 천지와 일월, 산과 바다, 생사와 농경, 어로, 빈부 등을 지배하는 12편의 일반신본풀이, 마을의 수호신인 당신의 내력을 말하는 당신본풀 이, 일족(一族)의 수호신을 말하는 조상본풀이가 섬을 지키고 있다. 이 신들의 노래는 346개나 되는 신당에서 불려진다. 그 가운데 제주의 토착신인 수렵을 생업으로 하던 남신인 한라 산신을 모시는 와흘본향당이나 제주 신당의 원조로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받은 송당본향당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신당들은 인적이 뜸한 곳에 돌담들을 쌓아 만든 정말 소박한 곳이다. 생각하니, 타다 남은 양초와 지전을 태운 냄새, 향내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신당 안에서 무서워 떨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거친 산, 바다와 싸우던 제주 민중의 소박한 기원이 신당에는 살아 있다. 새마을운동 시기 미신타파를 부르짖으며 민속문화재라 할 신당을 파괴 하던 때가 있었다. 그 와중에 현용준, 진성기 선생님 등이 가까스로 챙겨 놓은 신당과 무가들은 제주 신화의 특수성과 우수성을 전세계에 한껏 뽐내게 한다. 그리고 그곳을 채우던 심방들의 노랫가락이 아직 살아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현용준 선생님은 『한라산 오르듯이』(각, 2003)이라는 자전수필을 통해 제주 신화의 보존 과정을 흥미롭게 알려주셨다. ➃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문화평론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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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5
  • [제주 신화기행] ➁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제주에 전하는 창세신화인 천지왕본풀이는 무당들의 노랫가락에 실려 9편 정도가 전한다. 태초에 세상은 하늘과 땅이 서로 뒤섞여 처음과 끝도 없고 안과 밖도 없었으며, 삶과 죽음, 선과 악도 없는 혼돈의 상태였다. 하늘에서 푸른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검은 이슬이 솟아올랐다. 하늘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땅은 축시(丑時)에 열렸으며, 사람은 인시(寅時)에 태어났다. 이렇게 세상이 창조되었지만 천지개벽의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거인이 나타났다. 그의 앞이마에서는 두 개의 해가, 뒤 이마에서는 두 개의 달이 나타났다.   동물들이 말을 하고, 귀신과 사람의 구분이 없는 혼란은 계속되었다. 게다가 수명장자(쉬맹이)가 사나운 소, 말, 개를 앞세워 사람들이 거둔 소출을 독차지하며 사람들을 굶어죽게 하였다. 이를 안 천지왕은 번개장군과 벼락장군, 화덕진군과 풍우도사, 일만 군사를 이끌고 가 머리에 쇠테를 씌워 수명장자를 죽이려 했다. 그런데 그는 종을 불러 도끼로 머리에 씌워진 쇠테를 깨라고 명령하였다. 그 모습을 본 천지왕은 쇠테를 풀어 목숨만은 살려주었다.  지상에 잠시 머물던 천지왕은 지상의 총명부인과 결혼하여 대별왕과 소별왕을 낳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대별왕과 소별왕은 점점 자라났는데, 친구들에게 애비 없는 자식이라 따돌림을 받았다. 형제는 어머니에게 떼를 써 마침내 박 넝쿨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 천지왕은 큰아들 대별왕에게 이승을, 작은아들 소별왕에게 저승을 다스리라 했다. 작은아들은 수수께끼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이승을 차지하자고 형에게 제안했다. 마음 착한 형은 동생의 제안을 받아들여 내기를 했는데 두 번 다 형이 이기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소별왕은 꽃을 누가 더 잘 키우는지를 내기하고는 형이 잠든 사이에 잘 자라는 형의 꽃을 자신의 꽃과 바꿔버렸다.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승에서는 제2의 혼돈이 계속되었고 그 혼돈을 처리할 능력이 소별왕에게는 없었다. 할 수 없이 형의 도움을 얻어 해와 달을 하나씩 활로 쏘아 없앴다. 초목과 짐승은 소나무 껍질 가루로 눌러 말을 못하게 했다. 귀신과 생사람은 저울로 무게를 달아 보아 백 근을 넘으면 인간으로 못 넘으면 귀신으로 처리했다. 자연의 질서가 바로 잡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승으로 형이 떠나자 또다시 살인, 도둑, 간음 등 무질서가 여전했다.  신화학적으로 보면 천지왕은 불과 쇠를 다루는 외래적 존재로 제주 섬에 있던 수신계(水神系)의 수명 장자를 벌하였고, 그의 후계인 두 아들로 하여금 섬을 지배하게 하였다는 것으로 읽힌다. 두 개의 해는 극심한 더위와 가뭄을, 두 개의 달은 극심한 추위나 홍수를 의미한다. 그것의 조정은 곧 농작물의 풍작을 뜻한다. ➂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 박사(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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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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