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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1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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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무렵에 고향을 떠나온 나는 정작 서울 하늘 아래서 제주의 역사와 문학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삼별초의 일원이었던 김통정과 무당의 노래인 이공본풀이를 살피면서 유년의 이야기 속에 잠자던 제주가 선명하게 떠오르곤 했다. 가끔 쓰는 잡글도 여지없이 고향의 품안이었다. 어느새 제주는 내 의식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한복판에 들어선 한라산, 수백의 오름들과 초원, 1천여 종의 식물들과 짐승들이 삼삼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마냥 행복한 추억만 있지는 않다. 관광지의 어두운 그림자가 섬 토박이의 옹이 박힌 삶을 수렁으로 끌고 가는 악몽을 꾸게 된다. 점점 도시는 넓어져가고, 해안에 살던 사람들은 말과 소, 고라니의 터전인 초원과 한라산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었다. 제주가 지닌 이러한 명암을 떠올리며 나는 아름다운 풍경 너머에 도사린 토박이들의 노래와 이야기를 찾아 떠났다.
 
요즘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찾지만 예전에는 뱃길뿐이었다. 풍랑이 일면 항상 열흘이나 한 달을 잡아야 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를 갈 때에도 풍랑과 천둥, 번개가 쳐서 죽살이를 예측할 수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그는 꼿꼿이 뱃머리에 앉아 시를 지어 읊는 기개를 보여주었다.(阮堂金公小傳) 이제 뱃길은 카훼리호를 타고 완도에서 세 시간, 목포에서 다섯 시간, 인천에서 열 댓 시간이 걸린다. 섬이 가까워졌음은 맨 먼저 나타나는 한라산 봉우리를 통해 알 수 있다.
 
일찍이 정지용은 김영랑과 함께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들어서며 한라산을 보고는 어찌나 반가웠던지 초야에 쳐다보지도 못하던 신부를 솟는 해 아래서 와락 사랑하게 됨과 같이 그리던 산을 모셨다고 했다.(一片 樂土) 고려시대 삼별초의 입도를 막기 위해 김수와 고여림이 진을 쳤던 화북 포구,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지방관들이 정치적 복권을 꿈꾸며 바다만 바라보던 연북정(戀北亭)이 서 있는 조천 포구 등이 제주의 관문이었으나 지금은 제주항이 나그네들을 반긴다.

 

제주항에 내리면 협죽도와 종려나무가 남국의 정취를 자아내고, 아주 가까이 한라산이 다가와 있다. 해안도 로를 타고 다니거나, 서부산업도로 오일륙도로를 통해 중문이나 서귀포를 향할 때에도 한라산은 늘 가까이 버티고 서 있어 제주도 전체가 한라산 자락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젖무덤 같은 오름들이 초원을 수놓고, 보석처럼 빛나는 바닷물이 섬을 휘감싸고 있다.

 
해안에는 일출봉과 산방산이 우뚝 솟았고, 천지연폭포, 정방폭포, 천제연폭포가 은하수 가득한 밤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멱을 감을 듯 고운 자태로 바다를 향해 쏟아져 내린다. 이 신비로운 자연을 누가 창조했단 말인가? 섬사람들은 천지왕본풀이와 설문대할망설화를 통해 창조의 신화를 노래해왔다. 우리는 이 신화를 통해 섬사람들의 세계 인식을 짐작해 볼 수 있다. ➁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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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문화평론가(문학박사,시인)
[엠에스뉴스=고문선 기자] news@msnews.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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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화기행] ➀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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