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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2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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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➁편에서 이어집니다.

제주 섬은 순수한 토착민들만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다. 천지왕본풀이나 뒤에 보게 될 삼성혈신화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섬은 토착민들이 유입된 외지인들과 더불어 만들어간 공간이다. 제주에 들어온 시기를 보면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조선 중기 당쟁 시기로 중심부에서 쫓겨 들어온 사람들이다. 당신 본풀이들이 말하는 신의 내력은 유입과 이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상의 창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설문대할망(선문데할망, 설명두할망, 세명뒤할망이라고도 전한다.)이라는 거대한 여신의 제주 섬 창조로 이어진다. 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발이 바다에 닿아 물장난을 할 정도로 거대했다. 할망은 밋밋했던 섬을 아름답게 꾸미기 시작했다. 치마폭에 흙을 날라 한라산을 만들고, 구멍 난 치마폭의 흙으로 초원 위에 오름들을 만들었다. 성산 일출봉과 식산봉에 양 발을 디디고 앉아 시원스레 눈 오줌으로 소섬[牛島]을 만들었다. 그런데 섬에 갇혀 살던 사람들이 육지로 다리를 놓아 달라는 부탁에 할망은 속옷 한 벌을 요구했다. 거친 밥을 먹으며 살던 섬사람들은 100필의 명주에서 1필이 모자라는 바람에 속옷을 완성하지 못했고, 다리를 놓아가다 그만 둔 흔적이 조천 앞바다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렇게 제주 섬을 창조한 할망은 바다고기를 잘 잡는 할으방을 만나 윤 3월 16일 500형제 자식을 낳고 고기를 함께 잡으며 살았다. 그런데 식구가 많은데다 흉년이 들어 할망은 자식들에게 죽이라도 끓일 양식을 구해 오라고 타일러 보냈다. 죽을 끓이느라 어마어마하게 큰 가마솥에 불을 때다 할망은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오백 형제는 여느 때보다 맛있게 죽을 먹었고, 막내가 솥을 휘젓다 사람의 뼈를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 고기를 먹은 걸 안 이들은 통탄을 하다 모두 바위로 굳어버렸고, 한라산 영실(靈室)의 수많은 기암괴석이 바로 그것이라 한다. 가을 단풍을 만끽하려면 한라산 서측의 이곳 영실을 찾으면 좋다. 거기에서 오백장군(오백나한) 바위를 따라 흐르는 바람을 느껴보기 바란다.
 
이처럼 설문대할망 설화에는 섬사람들의 육지를 향한 지향과 좌절감, 그리고 척박한 땅과 바다를 상대로 싸우며 견뎌야 했던 지독한 가난이 슬프게 아로새겨져 있다. 고립된 섬에 살던 제주인들은 외지인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면 깊숙이 육지를 향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기팔은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아름다운 것은/ 내가 건널 수 없는 수평선/ 끝끝내 닿지못할/ 그리움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먼 바다 푸른 섬 하나)라고 노래했다. 그래서 문충성은 “제주섬은 가난과 한숨에 흔들리고 날마다/ 흔들리는 제주섬 지키는 설문대할망은/ 제주섬 사람들 수천 년 살아온/ 전설이 되고 바람이 되고 영욕이 되고/ 이어도를 꿈꾸는 꿈이 되고 노래가 되고”(설문대할망)라며 섬사람들의 슬픔과 꿈이 스며든 존재로 설문대할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다. 신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신들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본풀 이가 굿의 현장에 있다. 천지왕본풀이를 비롯한 천지와 일월, 산과 바다, 생사와 농경, 어로, 빈부 등을 지배하는 12편의 일반신본풀이, 마을의 수호신인 당신의 내력을 말하는 당신본풀 이, 일족(一族)의 수호신을 말하는 조상본풀이가 섬을 지키고 있다. 이 신들의 노래는 346개나 되는 신당에서 불려진다. 그 가운데 제주의 토착신인 수렵을 생업으로 하던 남신인 한라 산신을 모시는 와흘본향당이나 제주 신당의 원조로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받은 송당본향당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신당들은 인적이 뜸한 곳에 돌담들을 쌓아 만든 정말 소박한 곳이다. 생각하니, 타다 남은 양초와 지전을 태운 냄새, 향내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신당 안에서 무서워 떨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거친 산, 바다와 싸우던 제주 민중의 소박한 기원이 신당에는 살아 있다. 새마을운동 시기 미신타파를 부르짖으며 민속문화재라 할 신당을 파괴 하던 때가 있었다. 그 와중에 현용준, 진성기 선생님 등이 가까스로 챙겨 놓은 신당과 무가들은 제주 신화의 특수성과 우수성을 전세계에 한껏 뽐내게 한다. 그리고 그곳을 채우던 심방들의 노랫가락이 아직 살아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현용준 선생님은 『한라산 오르듯이』(각, 2003)이라는 자전수필을 통해 제주 신화의 보존 과정을 흥미롭게 알려주셨다. ➃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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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박사(문화평론가, 시인)

 

[엠에스뉴스=송은아 기자] news@msnews.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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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화기행] ➂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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