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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0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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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인근마을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다. ⓒ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⑤편에서 이어집니다.
김녕에서 가까운 세화리와 하도리를 지났다. 이곳은 1930년대 잠녀(潛女)들의 투쟁을 그린 『껍질과 속살』, 『바람타는 섬』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해녀조합 간부들인 일본인들이 가혹하게 잠녀들을 수탈 했고, 이에 대한 저항을 다룬 소설들이다.
 
해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잠녀는 제주도 바닷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나는 세화리와 하도리를 뒤로 하고 차를 몰아 성산 일출봉 터진목에서 그들을 만났다. 까만 잠수복을 한 그들은 사진을 찍는 나를 웃으며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박으로 정성들여 만든 테왁을 썼는데 지금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것을 쓰고 있다. 조금 거리를 두고 해녀들이 물에 들었다.
 
1936년 21세 때부터 제주도를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泉端一)의 『제주도』에는 “바가 지에 끈이 달린 테왁과 조개 딸 때 쓰는 갈퀴를 들고 물안경 쓰고 자맥질을 한다.…… 똑바로 선 자세로 물속에 얼굴을 박고, 목표물을 가늠한 다음 발을 힘 있게 굽혀 가슴께로 끌어당기고 머리를 잽싸게 물속에 디밀어, 몸을 뻗고 발을 공중에 흔들어 침하속도를 높인 다음, 신체가 완전히 물속에 잠기면 발을 차듯이 움직이고, 손으로 물을 양옆으로 가르면서 가라앉는다. 한 번의 잠수를 끝낼 때는, 몸을 꺾은 자세로 다리를 아래로 내려서 힘차게 바닥을 차고 솟구친다. 수면에 뜨는 것과 동시에 ‘휘유’ 휘파 람을 부는 것이다.”라고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 휘파람을 제주에서는 ‘숨비소리(숨비 질소리)’라고 한다. 이 소리를 내고는 물질하는 친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해녀들은 1900년대 초부터 섬 밖으로 벌이를 나갔다고 한다. 일본, 육지 연안, 강원도, 심지어는 청진 까지 갔다가 기선을 타고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 청도(靑島)까지도 갔다고 한다.
 
현기영의 거룩한 생애를 학창시절에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소설은 해녀 ‘간난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녀는 일제시대 때 잠녀의 딸로 태어나 17살에 상꾼 잠녀가 되어 빼앗긴 밭을 되찾는다. 놀음에 미친 시아버지 때문에 무너진 집안을 그녀는 잠녀 일을 하여 일으 키고, 어린 신랑을 읍내 공립학교까지 보낸다. 그리고 일제 말엽에는 징용에 끌려가게 된 남편을 이끌고 육지로 물질 나가 금강산 근처에서 8.15 광복을 맞는다. 마침내 미군과 소련군이 지키는 38선을 넘어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4.3항쟁 시기에 한 많은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 졌다. 강인한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너무도 서러웠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 뒤로는 일출봉이 장엄하게 서 있었고, 파도는 거칠었다. 이곳은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신경숙의 소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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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 강호(제주 효명사 주지)

 

표선민속촌과 성읍 민속마을에 들러 제주 도세기(돼지)도 보고, 올레며 정낭도 보며 옛 기억을 더듬었 다. 내 유년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갈옷을 파는 가게 앞에서도 한참을 서성거렸다. 푸른 감으로 물을 들이는 갈옷은 여름철 뙤약볕에서 김을 맬 때면 이만한 옷이 없었다. 땀도잘 흡수하고 바람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차를 달려 서귀포에서 이중섭이 거닐던 천지연폭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바로 추사 적거지로 향했다.
 
추사는 대정 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는 처음 화북진에 도착한 후 걸음을 옮겨 대정현의 송계순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섬 안의 섬이라 할 추사의 적거지는 가로 놓인 정낭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9년 간의 유배 생활은 추사로 하여금 한치의 틈도 없는 고독과 자연에의 몰입, 예술혼을 불태우게 했다. 그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사랑하는 아내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수선화를 사랑했다고 한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시름 가시고/ 너와의 선연(仙緣)은 다할 수 없어/ 호미 끝에 버려진 예사론 너를/ 오롯한 창가에 놓고 기른다.” 나는 어디 수선화를 심어놓지나 않았는지 주변을 서성거렸다.  
 
제주는 신화의 섬이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섬이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너머에 숨쉬고 있는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대별왕과 소별왕, 설문대할망을 이야기하고, 삼별초의 항쟁과 4.3항쟁, 해녀들과 유배자들의 쓰린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있기를 소망한다.
 
* 참고문헌 
고시홍,「제주섬의 소설적 변용」, 『바다와 섬의 문학과 인간』, 제주국제협의회 편, 1999.
김영돈, 『제주민의 삶과 문화』, 제주문화, 1993.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1994.
박종성, 「<천지왕본풀이>의 신화적 의미」, 『구비문학연구』6집, 한국구비문학회, 1998.
시바 료타로, 『탐라 기행』, 학고재, 1998.
오대혁, 「김통정 관련 서사물에 투영된 역사인식」, 『설화와 역사』, 집문당, 2000.
이영권, 『제주역사기행』, 한겨레신문사, 2004.
장주근, 『풀어쓴 한국의 신화』, 집문당, 1998.
진성기, 『남국의 민담』, 형설출판사, 1976.
진성기,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 민속원, 1991.
현용준, 『제주도 전설』, 서문문고, 1976.
현용준 현승환 역주, 『제주도 무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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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박사_문화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중이다.

 

 

[엠에스뉴스=송은아 기자] news@msnews.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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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기행] ⑥ 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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