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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9.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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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식 무당인 만신의 모습 ⓒ영화 ‘만신’ 스틸컷

 

[MS뉴스=이슬기 기자] 현대 굿과 점으로 통칭되는 무당은 부족국가 시절 통치자와 준하는 권력자였다.

 

무당은 한국의 샤머니즘 성격의 전통종교인 무(巫)의 샤먼을 뜻한다. 본디 무당이란 여성 샤먼을 부르는 말로 남자의 경우는 박수라 하여 이 둘을 함께 박수무당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남녀 모두를 통틀어 무당이라 부르는 추세다.

 

무의 기원은 고대 부족국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제정일체시기로 통치자가 사제와 통치자 두 가지 역할을 모두 담당하였다. 그러나 사회가 분화됨에 따라 제(祭)와 정(政)이 분리되었고, 이에 따라 무는 사제기능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제로서의 무가 유일무이한 권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이 제의와 예언, 치유 등의 신성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이들에게만 해당 역할을 수행할 권리가 주어졌기에 유일무이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럴지라도 무는 부족국가 시대 이후에도 삼국시대,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시대에서도 그 위세를 유지해갔다. 왕을 비롯한 궁중의 사람들은 이들이 갖춘 예언과 치유의 기능을 귀히 여겨 각별히 대우하곤 했다.

 

그처럼 위세 좋던 무가 맥을 못 추기 시작한 것은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5년경이며, 남한에서는 박정희 유신군부가 들어선 1961년경이다. 북한에서는 종교말살정책을, 남한에서는 무속 탄압을 자행함에 따라 무는 설 자리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무의 존재가 비과학적, 비합리적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배척받게 되자 무당들은 훼손되기 시작한 세습무의 전통성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민중의 호감을 사기 위한 광대적인 문화와 주술사로서의 역할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재 무는 법률상 종교가 아닌 상업적 서비스로 분류되고 있다. 무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점술, 퇴마, 부적, 굿을 파는 종교 서비스로 변질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샤머니즘이라는 무거운 단어보다 운세, 점괘 등의 단어를 쫓아 영험한 무당을 찾고 있다.

 

그러나 무에는 여전히 믿음과 수행, 배움이 남아있다. 샤먼으로서 전문적인 굿과 강신주술을 치러내기까지는 수많은 고통과 고행이 뒤따른다. 제대로 알고있지 못할 뿐 여전히 이들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요한 중재자인 것이다.

 

다만 무의 이름과 존재가 퇴색되고 있는 것은 이들을 흉내 내어 돈을 벌고자 하는 무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적지 않은 사이비들이 무당을 어쭙잖게 흉내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는 고대부터 이어내려온 뜻을 받들어 이어가고 있는 진정한 무당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엠에스뉴스=이슬기 기자] news@msnews.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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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탐구생활] ➁ ‘무당’의 기원, 부족국가 시절부터 존재한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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