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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6.1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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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대는 봄>의 세 주인공 류지애, 박무영, 한혜수가 한국형 여성 버디 연극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다. ⓒ극단 마음같이


[멘탈사이언스 오대혁 전문기자]  노안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때가 있었다. 늙음이라는 확정된 미래를 향해 달려나간다는 사실 앞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당황한다. 2045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이고, 그 속에 우리는 들어 있든지 죽음에 이르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늙음은 생물학적 시계의 흐름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늙음을 둘러싸고 온갖 노년의 역할이 요구된다. 돌봄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시골 또는 골방에 틀어박혀 박제처럼 껍데기만 유지하며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늙음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늙음이 요구하는 사회적 편견에 우리는 포로로 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학로에서 극단 ‘마음같이’가 공연하고 있는 <그대는 봄>(김정숙 작, 현대철 연출, 6월 2~14일, 스카이씨어터)이라는 연극은 그 늙음을 전면에 내세운다. 연출자 현대철은 말한다. “우리는 늙어간다. 이 명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자 현실이다.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말과 생각을 한다. 나는 이 세 친구들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가 아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좋은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라고 한다. 그가 연출해내는 것은 세 할머니들의 늙음이 아니라 삶이 맞다. 그 삶은 어떻게 구성되고 있을까?


연극은 정통 리얼리즘극에 가깝다. 그런데 그것은 사회과학적 분석에 기반을 두고 여성 노인들의 삶을 둘러싼 사회적 모순을 파헤치는 따위의 리얼리즘과 거리가 있다. 극이 시작되면서 들려오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OST라 할 색소폰 소리처럼 푸근하고 다정다감하며, 결코 경색되지 않은 리얼리즘이다. 전라도 시골의 세 할머니가 경험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쩌면 한 편의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보는 느낌이다.


세 명의 등장인물은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이웃이자 친구이다. 그런데 그들은 극의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 야금야금 집안 재산 다 팔아먹고 노모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불효자 자식을 둔 ‘민관이네’, 일찌감치 두 남편과는 사별하고 강아지 키우는 데만 신경을 쓰는 ‘장계네’, 더위에도 자식이 보내준 파카를 입고 뿌듯해하지만 찾아올 기미가 없는 ‘정철네’. 자식들 이름을 앞세우며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살아온 인물들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대감 속에서 속절없이 기다림으로만 채워진 나이든 어머니들이 그 이름들 속에 있다. 


그들은 도회지로 떠난 자식들이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삶을 산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불효하는 자식 얘기에 자존심이 상하고 친구 간에도 싸움박질하면서도 끝끝내 자식 옹호에 나선다. 그런데 연극 속 세 인물은 ‘포기’를 넘어선 ‘체념(諦念)’을 선택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불교에서 기원한 용어인 ‘체념’의 ‘체(諦)’는 깨달음의 단계에서 얻어지는 진실이다. 그것은 비움이요 버림이다. 포기가 상대의 힘을 알아 그만두는 것이라면, 체념은 자신을 알아서 힘을 거두는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그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야 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언년(봉례), 끝순(필순), 신자’라는 자기 이름을 찾고는 ‘이름 놀이’ 잔치를 벌이며 산수 구경을 떠난다. 


그러고 보면 <그대는 봄>은 여성 버디(buddy) 연극의 면모를 갖추었다 하겠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처럼 세 여성의 우정, 그리고 성장의, 한국적 서사가 <그대는 봄>에 나타난다 하겠다. 


그리고 연극이 연출해내는 세 할머니들의 퍼포먼스는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화투판을 두고 벌어지는 말다툼, 파카 입은 할머니 정철네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개를 자기 자식처럼 키우는 장계네와 티격태격하는 장면, 닭을 잡는다고 뛰어다니는 장면 등에서 이어지는 세 사람의 율동은 배꼽을 잡게 한다. 그들의 늙음은 결코 슬프거나 허탄하지 않고, 활기차며 아름답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극단 마음같이’를 이끌어온 연출자 현대철의 코믹 연출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극단 ‘마음같이’가 각박해지는 요즘 세상에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김정숙 작가의 작품 세계는 ‘마음같이’의 생각과 정말 잘 맞는다고 한다. 거기에 세 배우 ‘류지애, 박무영, 한혜수’의 연기가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려 주는지 모르겠다고 칭찬해 마지않는다. 관객인 내가 봐도 정말 그렇다.

한국형 여성 버디 연극의 새 장을 열어가는 <그대는 봄>이 지속적으로 공연될 수 있기를 바란다. 늙음을 넘어선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연극은 적잖은 힘을 북돋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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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여성 버디(buddy) 연극 '그대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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